서울교통공사에서 불붙은 채용비리 사태가 공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용 세습’ 의혹 등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공기업이 요 며칠 사이에만 한전KPS, 인천공항공사, 국토정보공사, 대전도시공사, 대한적십자사 등 꼬리를 물고 있다.

‘일자리 정부’에서 벌어진 공기업들의 파렴치한 채용비리 백태는 무엇보다도 미취업 청년들에게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공공부문이 청년 일자리를 뭉텅이로, 조직적이고도 지속적으로 ‘횡령’해왔다는 점에서 배신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 ‘빽’이 없어 내 인생이 이리 힘든 것인가, 피눈물이 흐른다”는 젊은이들의 좌절이 취업 커뮤니티마다 쏟아진다. 공기업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 확대정책이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던 정부의 장담도 빈말이 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공채 선발인원을 2020년까지 1000명가량 줄인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규직 공채를 바늘구멍으로 만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험 합격률만 99%로 높이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파문 확산에도 관련자들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친인척 입사자가 108명에 불과하다고 발뺌 중이다. 공사를 관할해야 할 박원순 시장도 “공기업을 개인 정치에 활용했다”는 지적에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지 말라”는 엉뚱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사태는 공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이 심판대에 올려진 문제다. ‘불법 고용 세습’에 대한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정부는 “노사 자치가 중요하다”며 불법을 방조하고 조장해 왔다. 지난해 말 275개 공공기관의 5년간 채용 전반을 특별점검하면서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전 정부의 취업비리는 작은 의심만으로도 구속영장부터 치고 보는 검찰과 경찰의 칼날도 현 정부에는 왜 이리 무딘지 궁금해진다.

‘일자리 정부’의 1호 정책인 ‘정규직 전환’을 복마전으로 만든 이번 사태는 국기 차원에서 다룰 일이다.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진상을 밝히고 엄단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취임 당시 문 대통령의 다짐을 공염불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