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집념에 대한 묵념
거리를 걷다 보면 특이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개화기 시대 복고풍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다. 아마 최근 방영된 드라마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가만 보면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레트로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매장에서도 LP판과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해 제품을 진열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레트로 시대에 나 역시 사전에만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단어 하나를 꺼내 보고자 한다. 바로 ‘집념’이다. 걱정되는 것은 집념이 우리들의 삶에서 이미 평안히 잠들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묘비명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새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다. 마라톤을 뛰는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걸을 수는 없었다고 했는데, 이런 마음가짐은 인생에서도 꼭 필요하다.

그는 그 먼 거리를 심지어 걷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우리는 걷는 것조차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0m만 간신히 오르고 나서 주저앉아 주변 풍경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우리를 산꼭대기로 데려다주는 것은 멈추지 않고 걷는 그 한 걸음이다.

집념에 묵념하는 시대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집념을 꺼내 자신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걸음들이 내가 부러워하던 자리에 서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모두가 가고자 하는 그 자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내 것이 돼 있을 것이다. 지금 왜 거기 주저앉아 있는가.

우리 모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원석들이다. 우리가 위로를 받는 많은 말들도 결국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가라는 뜻이다. 일을 하다 보면 지금 당장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뿐이다. 내일은 성공할 수도 있다. 오늘 포기한다면 내일 성공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는 순간은 성공하기 직전일 수 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할 수도 있는 이 시조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다 맞는 이치인 것 같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즐기듯 옛 시조인 양사언의 ‘태산가’ 내용도 즐기길 바란다. 그래서 가고자 하는 정상에 모두 다 오르는 기쁨을 맛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