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시대인 1만 년 전의 도시문명 유적
최초 도시 차탈회위크보다 2천년 앞서
주기적으로 옮기며 신전 세운 것도 주목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전문가 포럼] 인류문명사 뒤바꿀 괴베클리 테페 유적

지금 터키는 놀라운 발굴 성과와 마주하고 있다.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괴베클리 테페 언덕에서 발굴된 1만2000년 전 신전도시 유적이다. 바로 이곳에 세상의 상식과 기존 역사발전 이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인류문명사의 새로운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1963년 처음 이곳에서 발굴을 주도한 미국 시카고대 고고학자 피터 베네딕트조차 신석기 시대 흔적이 일부 보이지만 돌기둥이나 바닥은 중세 시대 무덤 터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1995년부터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팀이 20년간 이 지역을 집중 탐사하고 발굴해온 결과, 이 유적지가 적어도 1만1600년 전의 신전과 도시문명 유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대성당’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 신전의 지름은 30m에 이르고 평균 5m 높이의 기둥들이 원을 이루며 둘러서 있다. 기둥 1개의 무게가 10~30t이나 되는 돌기둥에는 사자 여우 가젤 뱀 전갈 멧돼지 같은 다양한 동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조각돼 있다. 더러는 포효하는 공격 자세로, 더러는 강자를 피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낮춤의 몸짓으로 투박한 원시 예술의 진수를 맘껏 발산하고 있다. 금속기를 사용할 상상조차 못하던 까마득한 시기의 작품들이다.

비석에 표현돼 있는 동물 표정 하나하나는 아직 완전한 의미를 담아낼 수는 없지만, 아마도 죽은 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의미이거나 우주에 관한 상징적인 메시지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사면체 각 기둥에는 알 수 없는 부호와 상징적인 동물들이 일련의 질서와 규칙을 갖고 표현돼 있다. 그들의 독특한 문자이자 소통 방식이었을 것이다.

연대로 보면 인류 최초의 도시 유적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예리코나 아나톨리아 중부 지방의 차탈회위크보다도 2000년이나 앞선 문명이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기원전 3500년께 4대 고대 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보다도 무려 7000여 년 전에 인류가 체계화된 도시 문명을 이루고 구조화된 신앙과 사회 체제를 갖췄다는 것은 인류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초기 도시문명이 농경, 동물 사육, 도구 사용을 중심으로 인구의 대량 동원이 가능한 농경·정착 시대 산물이라는 기존이론을 깨뜨리고, 농경 이전의 수렵·채취 시대에도 대규모 도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인류사의 새로운 가설을 제공하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인류 사회는 구석기 시대에는 수렵과 채집 경제에 머물러 살다가 약 1만 년 전 신석기 혁명으로 농경 정주와 함께 비약적인 생산경제로 전환하면서 체계적인 도시문명을 일구게 됐다고 배워왔다. 빙하기가 끝난 온화한 기후가 농업 생산에 적합했고, 인간의 위대한 창의성으로 동물을 사육하고 정착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개발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 결과 잉여생산물의 덕택으로 인구가 급증했으며, 토기와 직물 제조가 가능했고 일사불란한 계층 간 위계질서로 씨족사회에서 부족국가로 진입하면서 초기 고대문명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문자 사용과 도구 발명이 이어지면서 세계사에서는 이를 근대 산업혁명 못지않은 대변화로 보면서 흔히 신석기 혁명 혹은 농업 혁명이라 불러왔다. 이런 첫 사례는 기원전 8000년께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시작됐다. 터키 동남부의 차탈회위크와 이스라엘 예리코 등지였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고대인들은 주기적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신전을 건설했다는 것을 23곳이나 되는 신전 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신전을 계속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린 후 새로운 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200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신전 건설자들은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었고 이 신전을 영원히 버린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대규모 신전을 건설했던 도시 공동체의 발굴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무슨 비밀이 숨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인류 고대문명의 발원지이고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상류에 자리한 아나톨리아 문명에 대한 새로운 공부와 접근이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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