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탈북민 기자는 北취재 말라는 통일부
통일부가 15일 탈북민 출신 기자의 남북 고위급회담 취재를 불허했다. 기자단 일행이 현장으로 떠나기 한 시간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취재에서 배제된 기자는 2002년 탈북해 201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김명성 기자다. 김 기자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의 풀 취재도 맡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6시30분께 통일부 기자단에 “조선일보에서 취재 기자를 바꾸지 않으면 풀 취재단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알렸다. 그러면서 “북측의 이의 제기는 없었으며, 자체적·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기자가) 탈북민 출신이기 때문에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평양과 개성, 금강산 지역 등 방북 취재가 필요할 때와 북한 주요 인사의 남한 방문 시 순번제에 따른 풀 취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단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풀 취재단 구성을 정부 당국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간섭한 건 전례가 없다. 이번 고위급 회담에선 기자단이 정한 순서에 따라 조선일보를 포함해 네 개 언론사가 취재하기로 돼 있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회담을 마친 후 취재진에게 “(앞으로도) 오늘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똑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단의 기준과 책임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취재 제한 조치로 통일부가 남북 화해 국면을 의식해 지나치게 북한 측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날 출입기자 공동 입장문에서 “탈북민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야 할 부처인데,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차별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고 항의했다. 또 “통일부가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김 기자를 제외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덧붙였다. 김 기자는 “북한 김정은 체제에서 출신 성분을 따지는 행태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국내 거주 탈북민은 3만 명을 웃돈다. 하지만 대부분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2등 국민’이라고 자조한다. “2등 국민은 기자도 될 수 없는 것 같다”는 탈북민 출신 기자의 한숨 앞에 통일부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