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활짝 열린 외계 탐험 시대와 한국 과학
1957년 스푸트니크호가 연 외계 탐험 시대는 숨 가쁘게 진행됐다. 1969년 달에 간 아폴로 11호와 1977년 발사돼 외행성 탐사 임무를 마치고 이제는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별들로 항진하는 보이저호 두 척은 외계 탐험이 경탄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음을 일깨워주는 이정표들이다.

근자에 외계 탐험이 활력을 얻었음을 가리키는 징후들이 나왔다. 외계 탐사가 제대로 나아가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물론 적절한 기술이다. 많은 사람과 장비를 싣고 싼값에 외계로 갈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기반이다. 탐험이 일시적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행되려면 엄청난 탐험 비용을 감당할 만한 수요가 있어야 한다.

외계로 나아가는 기본 기술은 로켓이다. 이제는 원숙한 기술이 됐지만 로켓은 연료를 모두 싣고 간다는 문제를 안았다. 그래서 규모가 커지면 유효탑재량(payload)이 빠르게 줄어든다. 이런 결점이 없는 기술이 햇살돛(solar sail)이다. 아주 얇은 돛에 햇살을 바람처럼 받아 나아간다. 연료가 필요 없고 구조가 간단한 데다 끊임없이 가속되므로 장거리 여행에선 속도도 빠르다. 외계 탐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려면 이 기술이 실용적이 돼야 한다.

그러나 햇살돛을 외계로 쏘아 올리려면 로켓이 필요하다. 이 사실이 말해주듯 우주선의 연료는 대부분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 데 들어간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우주 승강기(space elevator)다. 먼저, 적도 상공의 지구 정지궤도에 위성을 띄우고 거기서 지표에 줄을 내려 고정시킨다. 이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긴 줄을 뻗친다. 외계로 가는 사람과 화물을 실은 차량이 줄을 타고 오르내린다. 기계적 승강이므로 로켓에 비해 에너지가 아주 적게 든다. 외계로 뻗친 줄에서 우주선을 풀면 원심력을 이용해서 태양계의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외계 여행은 우주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햇살돛을 이용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3만5786㎞ 상공의 지구 정지궤도에서 내려온 줄은 자체 중량만으로도 끊어진다. 그래서 가벼운 붕소나 탄소로 만든 섬유만이 견딜 수 있다. 구글이 2014년 우주 승강기 사업을 검토했다가 완벽한 탄소 나노튜브의 최대 길이가 1m라는 것을 발견하고 사업을 동결했다.

일본 시즈오카대가 아주 작은 모형으로 우주 승강기의 가능성을 곧 실험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길이 6㎝, 폭 3㎝에 높이 3㎝의 초소형 승강기를 두 위성 사이에 쳐진 10m 길이의 줄로 달리게 한다는 얘기다.

일본은 햇살돛 연구에서도 가장 앞섰다. 2010년 발사된 햇살돛 ‘IKAROS호’는 두께가 7.5마이크로미터(㎛)이고 한 변이 14m인 정사각형 돛을 달았다. 금성 탐사 임무를 완수하고, 이제는 태양 둘레를 돈다.

외계 탐사의 경제성은 시장만이 보장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경쟁 덕분에 외계 탐사가 촉진됐지만 냉전이 끝나자 각국 정부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기업가들이 외계 탐사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번에 일본의 부호가 달 일주 여행의 첫 고객이 돼 예술가들과 함께 가겠다고 한 것은 외계 탐사의 좋은 징후다.

이처럼 우주 승강기, 햇살돛, 그리고 우주 관광 분야에서 동시에 나온 움직임들은 외계 탐험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알린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류는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종(種)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인류는 외계로 나아가야 한다.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생명의 특질이다.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의 두드러진 활약이다. 물론 이런 성과들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매사에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그 위에 끈기 있게 성과를 쌓아 올린다. 이번에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 교수는 그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성공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멀리 내다본 계획에 따라 차분하고 꾸준히 실력을 기르지 않고, 단기간에 위정자의 치적으로 내놓을 만한 사업들에 치중한다. 활기찬 원자력산업을 느닷없이 없애겠다고 나선 정권 아래서 큰 기대를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자들이 분발하면 좀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