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가짜뉴스'보다 더 무서운 것
한국에 ‘4·19 혁명’이 있다면 중국에는 ‘4·19 거사’가 있다. 다른 건 중국에선 ‘4·19’를 잊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1958년 4월19일 새벽 5시,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는 200곳으로 나뉜 ‘전구(戰區)’에서 총지휘관 명령에 맞춰 사수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을 들지 않은 시민들은 세숫대야와 물통을 두들기거나 꽹과리를 쳐대며 ‘진격’을 함께했다. ‘참새 섬멸 대작전’이었다. 1958년 한 해에만 중국 전역에서 2억1000만 마리의 참새가 소탕됐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뒤따랐다. 전국의 논밭에서 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골목과 가로수엔 온갖 벌레가 들끓었다. 농작물이 초토화되면서 대기근이 닥쳤다. 몰래 소련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얻어다 풀어놓는 궁여지책까지 동원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이런 사달이 일어났는가. 중국공산당 중앙당에 접수된 “참새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한 농민의 탄원서가 발단이었다.

마오쩌둥 주석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참새를 박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영 연구기관은 “참새 한 마리가 매년 곡식 2.4㎏을 먹어 치우니, 참새만 박멸해도 70만 명이 먹을 곡식을 더 수확할 수 있다”며 마오의 ‘혜안’을 찬양했다. 문화예술단체 대표를 맡고 있던 궈모뤄가 잽싸게 장단을 맞췄다. “참새들이 수천 년간 우리의 양식을 수탈하며 저질러온 죄악, 이제야 관계를 청산할 때가 왔다.” 중국의 문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들의 ‘적폐’를 규탄하는 시(詩)를 쏟아냈다. 정작 동물학자들은 문외한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마오쩌둥의 광기(狂氣)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7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급진적 생산 확대정책인 ‘대약진운동’을 발령했다. 노동자들을 집단농장에 수용해 밑도 끝도 없이 ‘증산’만을 강요한 이 ‘운동’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4500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대참사로 막을 내렸다.(프랑크 디쾨터 ‘마오의 대기근’)

마오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린 순간, 국방부장 린뱌오가 나섰다. “최근 몇 년간 곤란한 일이 많았지만 우리의 방향은 정확했다. 실행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지, 노선의 착오는 아니다.” 자신을 포함한 ‘아랫것들’의 지시이행 역량 부족을 원인으로 몰고 갔다. “모든 문제는 마오 주석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석은 우리의 영혼이다.”

꽤 오래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을 회고한 것은, 합리적 비판과 건전한 견제가 틀어 막힌 사회에서 어떤 참극이 벌어졌는지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최고지도자의 말에 나라 전체가 맹종한 결과가 어땠는지를 일깨워주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많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탈(脫)원전 밀어붙이기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일방 추진’ ‘불통(不通)’ 논란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 호흡 고르며 성찰해볼 때가 됐다. 이 나라만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일자리 재앙에 내몰린 현실을 ‘정책 실행과정의 문제’나 ‘공무원들의 지시이행 역량 부족’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건지도 진솔한 점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건 한 나라가 건강한 담론 창출과 치열한 토론의 사회적 심폐기능을 상실한 채 강요된 특정 주장에 포획되는 상황이다. 세상을 읽게 해주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차단된 사회는 ‘지적 면역력 결핍증’에 감염되고 만다. 거짓 정보를 구분해낼 안목을 잃게 되면 교묘한 조작과 선동에 나라 전체가 놀아나기 십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0년 전 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소동’이 한 지상파 방송의 사실 조작과 왜곡에 의해 증폭됐던 사실을 새겨야 할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가짜뉴스는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라며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려 건강한 담론 형성을 막고, 이 나라에서 수치스러운 사태가 재현되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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