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美 시장경쟁 vs 中 사회 통제…AI 승부는 기울었다
미·중 간 통상전쟁 이면에는 디지털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 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 디지털 패권 사슬의 정점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의 치열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AI 정책의 방향성은 다르다. 중국은 무엇보다 AI 기술을 사회 통제와 감시에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권위주의, 디지털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무색하지 않다. 일부에선 사회주의 완성이 AI를 통해 실현될 것으로 믿기도 한다. 반면 미국은 시장 주도의 경쟁 원칙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데이터는 하나의 자본이며 독점을 행사한다면 정부가 개입한다는 원칙이다. 과연 중국과 미국의 AI는 어떻게 전개될까.

中, 사회주의 AI정책

지난 8월 말 구글 직원이던 잭 폴슨은 2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떠났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수학 강사를 지낸 인재였다. 하지만 그는 구글에서 추진한 드래곤플라이(잠자리) 프로젝트에 강하게 반발했다. 드래곤플라이는 중국 정부에서 요구한 검색 엔진 개발 프로젝트였다. 중국 정부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종교 이슈를 자동 검열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엔진에 갖추도록 주문했다. 물론 다른 검색 기능과 연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폴슨은 이 같은 통제 기능을 갖춘 소비자 데이터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다 결국 사직했다. 그는 사직서에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표를 쓴다고 적었다. 6명의 다른 직원들도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구글을 매우 당황하게 한 사건이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나서 구글에 중국 검열 정책을 받아들이는 엔진 개발을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거창한 AI 발전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기준 700억위안(약 11조5000억원) 규모의 중국 데이터 시장 규모를 2020년까지 두 배가 넘는 1500억위안, 2030년까지 1조위안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다. 자율주행과 로봇산업, 의료산업 등 AI 관련 산업은 2030년까지 10조위안(약 1641조원)까지 늘린다. 이런 시장에 미국 기업까지 앞다퉈 진출하려 하고 있다. 구글이 이런 직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중국 시장에 들어가려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뉴스의 맥] 美 시장경쟁 vs 中 사회 통제…AI 승부는 기울었다
하지만 중국의 AI가 구글 사례처럼 지향점이 서구 사회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확연하다. 지난해 발표한 AI 발전계획에서도 중국 정부는 ‘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AI에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AI를 사회 통제와 감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뜻이 담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미 지난해 말 열렸던 19차 중국 공산당 전회(전국대표대회)에서 서구와의 이념과 체제 경쟁을 선언한 터다.

중국은 한 걸음 나아가 올해 초 ‘사회신용제도’를 도입했다. 개인의 모든 정보를 취합해 AI를 이용해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이다. 공유자전거를 늦게 반납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면 신용 점수가 깎인다. 대출을 연체하거나 정부에 불순한 발언을 해도 마찬가지다. 점수가 낮으면 여행 자유를 제약하고 이직이나 취업 등에도 불이익을 준다.

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20년부터 14억 명의 중국 국민 모두를 상대로 이 제도를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재 10억 명가량이 이 신용정보시스템에 등록됐다.

CCTV 2030년까지 3억대

중국이 추구하는 사회신용제도의 주요 방법은 얼굴 인식시스템을 통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개인 결제 정보를 모두 연동하는 시스템 구현이다. 중국 전역에서 2억 대의 폐쇄회로TV(CCTV)가 중국인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판독하고 해석하기 위해선 인간의 손으로는 부족하다. AI가 이 일을 대신한다. 특정 인물이 화면에 있는지 바로 식별이 가능하다. 올해 2월 국제인권단체 휴먼워치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시위한 사람들을 수감할 때 CCTV와 AI, 빅데이터가 사용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CCTV를 3억 대로 늘리는 한편 인공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에도 연동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이런 CCTV는 제3세계에서 인기다. 스리랑카와 이란 러시아 잠비아 짐바브웨에 감시 장비를 팔고 있다. AI기업 이투는 안면인식기술이 있는 웨어러블 카메라를 말레이시아에 팔았다. 센스타임은 이런 인식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 등 다른 분야에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소비자 금융기술도 중국 정부가 주안점을 두는 분야다. 알리바바에서 운영하는 세서미 크레딧을 통해 소비자들의 금융 정보를 쉽게 파악한다. 데이터의 양이 많은 만큼 데이터 기술도 중국에 많이 확보돼 있다. 중국의 군사 AI도 미국에 상당할 만큼 따라왔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6월에는 119대의 무인기를 자유로 조작하는 실험에 성공해 미국 국무부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데이터 처리나 안면인식 기술 이외에 딥러닝 등 핵심 인공지능 기술에선 미국에 한참 뒤떨어진다.

지금 중국은 가장 광범위하고 복잡한 감시시스템을 두고 있으면서 가장 발달한 디지털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디지털 성장이라는 희한한 아이러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허용되지 않은 방법으로 데이터를 얻고 있다. 조세기록이나 의료기록 건강기록 금융기록 위치정보 등이 모두 국가 손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시장이 이끌어가고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AI에 필요한 데이터는 사회 통제수단이 아니라 자본의 하나로 인식한다.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갖는다는 것은 독점이고, 이를 견제하는 게 정부 역할로 본다. 비대칭적인 정보 지배력으로 진입 장벽을 높이거나 경쟁자를 배제하면 명백하게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데이터 활용을 위한 소프트웨어 앱(응용프로그램)을 오픈해 누구나 쉽게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도 구축하고 있다.

“성장엔 개인자유가 우선”

정치학자 니컬러스 라이트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20세기에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간 경쟁이 있었다면 21세기는 자유민주주의와 디지털 권위주의의 경쟁이 될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다. 그 권위주의의 수단으로 가장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AI 기술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AI를 통해 행정 효율성을 높여 시민의 도덕적 행동을 장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AI가 자유민주주의에 대적할 대안일 뿐 아니라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제롬 코헨 미 뉴욕대 교수는 “경제가 성장을 하기 위해선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AI와 빅데이터에 거액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 페이스는 둔화하고 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보다 자유로운 곳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개인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면서 데이터 거래를 자유롭게 하는 시장이 본격 전개되면 중국에 뒤처진 데이터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