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중소기업부장
[김용준의 데스크 시각] 기득권 없는 벤처 도시 건설에 대하여

“우버는 택시 때문에 사업할 수 없고, 드론은 군부대 때문에 못 띄운다. 인공관절을 어렵게 개발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허가받으려 하면 정부는 임상결과를 가져오라고 한다.”

옴부즈맨을 지낸 김문겸 숭실대 교수가 한 말이다. 한국에서 왜 혁신 기업, 혁신 모델이 나오기 어려운지에 대한 얘기였다. 이런 풍토에서 어쩌다 벤처 마인드를 가진 공무원이 있다고 치자. 그가 과감히 허가를 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얼마 후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렇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내걸었지만, 혁신은 애초에 불가능한 생태계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혁신성장도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처럼 정치적 구호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홍콩을 만들자

얼마 전 한 벤처기업인 A를 만났다. A는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홍콩 모델을 가져오자”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홍콩의 정식 명칭은 ‘홍콩 특별 행정구’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면 모든 법은 독립적인 홍콩자치정부가 만든다. 한국에도 이런 곳을 선정해 실험도시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우버가 자유롭게 영업하고, 드론을 마음대로 띄워 실험하고,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곳. ‘벤처·스타트업 자유도시’ 정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란 게 주장의 요지였다. 정부도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각종 법률·회계·세무·특허 문제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공용 인프라)을 갖춰 놓고 벤처기업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그는 “기존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플레이어, 즉 기득권층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장소도 고민했다고 한다. 새로 건설하는 도시, 그래서 기득권이 없는 새만금이 어떠냐고 말했다. 남북한 관계 진전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후보지로 고려해 볼 만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또 아직 기득권이 뿌리내리지 않았고, 공항 등 인프라가 갖춰진 영종도도 후보로 거론했다.

국가차원의 M&A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순차적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새로운 파괴적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중국이 상상 이상의 속도로 경쟁력을 갖춰 가며 미래기술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더 급하다는 얘기였다. 그의 말대로 기술발전은 불연속적이고, 적응할 만하면 판이 바뀌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축적의 방식’으로는 한국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는 또 다른 근거도 제시했다. “기업사를 보면 자신의 노하우만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더 빨랐다. 이 M&A 모델을 국가 성장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척해 일군 새로운 땅에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는 것이 국가 차원의 M&A라는 얘기였다.

규제개혁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하자 그는 “대통령이 규제를 풀라고 해도 공무원들은 풀 생각이 없다. 실무 차원으로 가면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벽에 막히기 때문에 더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혁신성장을 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혁신을 실험하는 것이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훨씬 현실적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의 홍콩’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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