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도쿄 부엌'과 '오사카 식탁'
일본 최대 수산시장인 도쿄 쓰키지(築地) 시장은 참치 경매로 유명한 곳이다. 수산물뿐만 아니라 청과물 경매도 매일 이곳에서 한다. 도매를 전문으로 하는 장내시장의 아침 경매가 끝나면 일반인들을 위한 장외시장이 활기를 띤다.

신선한 생선과 초밥, 먹기 좋게 손질한 성게알, 따끈따끈한 계란말이 등을 파는 맛집도 몰려 있다. 아침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선 모습 또한 진풍경이다. 이곳은 먹거리 외에 닭고기와 계란, 가공식품류까지 취급하는 종합시장이어서 ‘도쿄의 부엌’으로 불린다.

쓰키지는 매립지라는 뜻이다. 400여 년 전 왕궁에 어류를 공급하던 어부들이 남은 생선을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형성했다. 1869년 외국인 거주지로 지정된 뒤에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도 했다. 전신창업지(電信創業地) 같은 근대화 흔적이 남아 있다. 번화가인 긴자(銀座)와 인접한 도심 명소인 데다 전철까지 바로 연결돼 접근성도 좋다.

오랫동안 사람과 상품, 역사와 기술을 아우르며 독특한 시장 문화를 이끌어온 이곳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새 터전으로 이전하기 위해 오늘(6일) 문을 닫는다. 오는 11일부터는 인근에 있는 도요스(豊洲)에서 ‘풍요로운(豊) 땅(洲)’의 시대를 다시 열 예정이다.

도쿄에 쓰키지 시장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구로몬(黑門) 시장이 있다. ‘오사카의 부엌’ ‘오사카의 식탁’으로 불리는 이곳은 난바(難波)지구, 도톤보리(道頓堀) 등 관광 명소와 가까워 하루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외국인들에게도 먹거리와 볼거리 명소로 이름 나 있다. 하루 방문객 3만여 명 중 80%가 외국인이다.

구로몬은 200여 년 전 인근 사찰에 건립된 ‘검은 문’에서 따 온 이름이다. 한때는 경기 침체로 ‘흑(黑)역사’를 겪기도 했지만 상인들의 자구노력으로 세계적인 명물이 됐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아치형 지붕, 흙바닥을 깨끗하게 단장한 타일, 각국 언어로 제작한 안내판·지도·책자, 관광객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푸드 코트’ 등으로 승부한 결과다.

쓰키지와 구로몬 모두 정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상인들이 스스로 키운 전통시장이다. 경쟁력이 뛰어난 만큼 대형마트와 갈등도 없다. 이처럼 잘나가는 시장에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맛’과 ‘멋’이 있고 특유의 스토리가 있다. 최고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전통시장에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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