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천자 칼럼] 트럼프식 고립주의

미국과 전쟁을 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건국부터 그렇다. 무기도 군복도 제대로 없던 시절 최강 영국에 선고포고를 감행하고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미국이다. 패권국이 된 것도 1·2차 세계대전 승리를 통해서다.

수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대외적으로는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미국의 오랜 외교전략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6년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우리 운명을 유럽 어느 지역과 얽히게 해선 안 된다”는 고별사를 한 이래의 전통이다. 1823년에는 ‘먼로 독트린’이 발표됐다. “아메리카는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 유럽도 아메리카에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단재 신채호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신성한 문라(文羅)주의’라고 칭한 바로 그 ‘먼로주의’다.

고립주의를 깬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상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다. 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며 1차대전 참전을 선언했다. 윌슨은 독일의 항복을 받아든 뒤 다시 ‘평화의 사도’로서의 길을 걸었다. 한국 등 약소국 국민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된 역사적 ‘민족자결주의’도 천명했다.

윌슨이 그렇게 봉합에 나섰지만 이후 미국의 고립주의는 수시로 궤도를 이탈했다. 6·25전쟁, 베트남전 참전으로 유명무실화된 고립주의로 다시 복귀한 건 베트남전 포화가 한창이었을 때다. 미국은 1969년 괌에서 ‘닉슨 독트린’을 내놓으며 고립주의로 회귀했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사람들이 하라”며 발을 뺀 것이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모호함이 더해진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전기를 맞았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엔에서 “국제기구가 시급한 안보문제에 무능하다면 미국이 일부 단독으로 해결하겠다”고 연설하고 걸프전을 감행했다. 그렇게 ‘제국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부시가 섰던 유엔 연단에서 엊그제 트럼프가 연설했다. “우리는 글로벌리즘을 부정한다”고 했다. CNN은 “자초한 고립주의의 길이 미국의 적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의 파격은 국제경제 질서에도 쓰나미를 불렀다.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전통적인 우방들과도 무역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돌아보면 미국의 고립주의는 ‘변형된 개입주의’ 성격이 짙다. 안보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자국 이익을 관철한다. 트럼프의 언어는 늘 이중적이다. 자유무역 거부가 아니라 ‘불공정한 무역 개정 요구’라는 식이다. 트럼프의 종횡무진이 불안한 것은 북핵 게임이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까봐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핵을 용인하는 ‘트럼프 독트린’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다. 북핵만큼은 고립이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연대로 풀어나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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