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순환출자의 연결 고리를 모두 끊었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가진 1조원 규모의 삼성물산 지분 3.98%를 처분하면서 계열사 간에 돌고 도는 순환형 지분소유 구조가 다 해소됐다. 지분 축소로 경영권 방어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이 물량을 시장에 내다 판 점도 주목된다. ‘내부 거래’라는 불필요한 억측이나 오해를 원천 차단하는 ‘정공법’으로 정부 정책에 최대한 부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삼성이 순환출자는 완전히 해소했지만 정부가 제시한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92%)도 매각하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보험사가 보유할 수 있는 계열사 주식을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바꾸고 총자산의 3%까지만 허용하게 하려는 정부·여당의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를 겨냥한 맞춤형 법안이다. 이 요구를 충족하려면 삼성생명은 16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증시에 가할 물량 충격도 충격이지만,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흔들리게 생겼다.

삼성으로서는 이 문제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보험업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금융산업 구조개선법, 지주회사법 등 여러 개 법을 동시에 맞춰야 하는 데다 수십조원의 자금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중 사중의 규제 속에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있는 기분”이라는 삼성의 하소연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시행 각론이 아니다. 정부가 압박해 온 지배구조 개편안이 보편타당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도 받을 만한 것인가 하는 게 근본 문제점이다. 근 20년째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공표해 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고 했다. 선진국들 거의 모두가 그렇다.

“이래도 덫에 걸리고, 저래도 덫에 걸릴 상황으로 왜 기업을 몰아넣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규제완화를 외치며 다른 쪽에서는 겹겹의 족쇄를 채우는 행위”라는 하소연에도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몇 년간 행보를 보면 한국에서 ‘정책 리스크’와 ‘정치 리스크’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삼성을 결국 국민기업화 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정책 규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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