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經協 가속' 신호 될 수 없는 평양 공동선언
3차 남북한 정상회담이 채택한 ‘9·19 평양 공동선언’은 나름대로 풍성한 내용을 담았다. 군사긴장 해소, 경제협력 가속화,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설, 교류 활성화 등의 내용이 담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파격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기로 했으며,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고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으면 영변 핵시설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육성과 문서를 통해 핵폐기 관련 사항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낙관무드에 젖어 있어도 좋을 만큼은 아니다. 첫째, 공동선언 제5조에서 언급된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에서 ‘핵위협’이란 미국이 북한에 가하고 있는 핵위협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북핵 포기에 앞서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 전략무기 전개, 연합훈련 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투발수단, 핵물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구무언(有口無言)이며, 셋째 영변 핵시설 폐기도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조건이 달려 있어 미국이 종전선언 서명, 제재 완화, 미·북 관계 개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변 핵시설도 폐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고, 영변 외 지역에 산재한 핵시설을 어떻게 한다는 말도 없다. 결국 북한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개될 미·북 핵협상과 북한의 행동을 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정부가 평양회담을 ‘성공’으로 단정하고 자축할 때가 아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과속 질주를 해왔고 이번에도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중재를 자청하며 평양으로 달려갔다. 국민은 이런 외길 행보가 북핵 폐기와 남북 상생이란 ‘대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지만 문재인 정부로서는 ‘낭패’로 귀결되는 경우 맞닥뜨려야 할 위험부담도 계산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듯, 북한이 원하는 것이 핵 불포기를 전제한 가운데 한국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얻어내고 그것을 발판으로 동맹 이탈, 연방제 통일, 주체통일 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감수해야 하는 첫 번째 위험부담은 북한의 계략에 이용당한 무능한 정부로 각인돼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 위험부담은 한·미 관계에 끼칠 악영향과 동맹신뢰의 손상 가능성이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할 때부터 미국은 ‘남북관계 과속’을 경고해왔는데 정부는 남북연락사무소 개설을 강행했고 제재이탈 의심을 사면서까지 대북경협을 서둘렀으며 이번 3차 정상회담까지 강행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북핵폐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한·미 간 간극은 커지고 동맹국으로서의 한국 입지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세 번째 위험부담은 안보와 관련한 것이다. 현재 국가정보원의 대공(對共) 기능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국군기무사령부)의 군내 용공(容共) 활동 감시 기능은 약화됐으며, 축소지향형·수세형 군사력을 지향하는 ‘국방개혁 2.0’도 발표됐다. 경제에서는 ‘먼저 주고 나중에 받기’와 ‘더 주고 덜 받기’가 가능할지 모르나 안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북핵 문제가 낭패로 귀결되면 뒷감당이 쉽지 않을 것이며 판문점 선언의 비준, 종전선언 체결 등이 서둘러 이뤄진 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냉정하게 후속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북핵 폐기 전에 앞질러 안보역량을 감축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남북 상생과 북한 비핵화도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지난 14일 한국 최초의 중형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에서 문 대통령이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