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중화제국' 독주 막을 길은 한·미동맹밖에 없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6·25전쟁)이 끝난 뒤 마오쩌둥은 온 세상이 자기 것 같았다. 조선반도에서 세계 최강의 미군과 붙어 봤더니 별것 아니었다. 철강만 있으면 탱크, 대포를 만들어 인민해방군을 천하무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약진 운동을 벌이며 “인민의 힘으로 철강 생산에서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을마다 소형 용광로를 제작해 철강 생산을 무자비하게 독려했다. 중앙당의 빗발치는 독려에 마지막에는 밥을 해 먹는 솥과 쟁기, 호미 같은 농기구까지 마구 용광로에 쑤셔 넣었다. 그 결과는 비참했다. 3000만 명의 인민이 아사했다. 이렇게 마오쩌둥의 ‘철강몽(鐵鋼夢)’은 대참사로 끝났다.

세기가 바뀌어 덩샤오핑식 집단지도체제를 마오쩌둥식 1인 지배체제로 바꾼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몽’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철강이 아니라 경제와 군사에서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도전장을 낸 시진핑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기가 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만둘 리 없다.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누가 이기느냐’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중국이 한 판 붙으면 항상 중국이 승리했다. 과거 미국의 통상정책은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 농산물 수출업체 같은 거대한 기업의 워싱턴 정치권 로비에 의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잘 아는 중국은 통상분쟁이 있을 때마다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찔러 굴복시켰다. 1990년대 중반, 중국에서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심하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나선 마이크로소프트(MS)에 등 떠밀린 미국 정부가 ‘스페셜 301조’를 발동해 지식재산권 위반으로 중국에 무역보복을 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지도부는 “미국에서 대량 구입하기로 한 보잉 항공기 대신 유럽의 에어버스를 사겠다”고 강하게 되받아쳤다. 보잉사가 발칵 뒤집혔다. “그까짓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로 보는 손해는 수억달러지만 보잉은 수십억달러를 날린다.” 당연히 로비력이 강한 보잉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슬며시 빼어 든 칼을 집어넣었다.
[뉴스의 맥] '중화제국' 독주 막을 길은 한·미동맹밖에 없다
먹히지 않는 中 대응보복 전략

그런데 이번 무역전쟁에선 이런 중국의 대응보복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게임의 룰을 바꿔 수천 개 품목에 융단폭격을 해버려 미국 업체가 로비할 겨를이 없다. 지금 두 나라는 치킨게임형 무역전쟁을 하고 있다. 협상을 거부하며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마주보며 달리는 자전거처럼 치닫는 것이다. 이런 치킨게임에서 최후의 승자는 ‘어느 나라가 무역전쟁으로 생기는 경제·정치적 비용과 고통을 잘 이겨내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두고봐야겠지만 지금은 중국이 밀리고 있는 것 같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하락하고 주식시장이 요동치며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무역전쟁이 벌어진 뒤 중국 외환보유액의 약 30%에 해당하는 5000억달러가 해외로 빠져 나갔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1조2000억달러어치 매각을 통한 보복도 쓰기 힘든 비장의 무기일 뿐이다. 일시에 매도하려고 하면 살 사람이 없고 조금씩 나눠 팔면 나머지 국채 값이 폭락해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실업률은 완전 고용에 가까우며 감세 효과 덕분에 기업의 수익률은 높아지고 있다. 각종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 중국에선 중국몽을 설계한 ‘칭화대파’와 이를 비판하는 ‘반(反)칭화대파(도광양회파)’ 사이에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도광양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다. 위먀오제에 베이징대 교수는 지난 4월 출간한 저서 《중·미 무역》에서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하락(-0.753%)하는데 중국의 GDP는 오히려 증가(+0.80%)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한 판 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대단한 자신감이다.

칭화대파와 도광양회파 갈등

하지만 리린 인민대 교수 같은 도광양회파는 생각이 다르다. 칭화대파가 시 주석을 부추겨 쓸데없이 미국을 자극해 무역전쟁을 일으켜 중국 경제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워싱턴의 압박과 중국 내부의 반발에 직면한 시 주석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적당히 체면을 세우고 마무리 짓는 출구 전략이다. 이때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줘야 한다. 당연히 반대세력은 대미(對美) 굴욕이라고 난리를 피울 것이고 그럼 제왕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는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부품 공급 중단'은 악수

아니면 미국과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애플 같은 미국 업체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으르렁거린다. 이건 베이징이 선택할 수 있는 악수(惡手) 중의 악수다. 전량 중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이 당장은 고통받겠지만 결국은 생산기지를 다른 나라로 옮길 것이다. 물론 불안을 느낀 다른 외국 기업들의 중국 대탈출(!)도 시작된다. 이는 잘못하면 중국 경제의 침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냉전시대 구 소련은 미국과 과도한 군비 경쟁을 하다 스스로 자멸했다. 일본 경제도 1980년대 미국과 격한 무역분쟁을 한 뒤 20년 장기 불황의 터널에 빠졌다. 중국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면 공산당 지배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만약 이번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면 2050년 중국이 진짜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고 군사패권국이 된다. 그러면 그간 우리의 번영과 안정을 가능케 했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가고 중화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 그럴 경우 한국의 미래는 어떨까?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미래 한국 경제와 안보 환경이 모두 불확실성의 먹구름에 뒤덮일 것이다. 우선 ‘중국제조 2025’가 목표로 하는 10대 전략산업 육성이 성공하면 한국 경제는 중국에 추월당하고,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발붙일 먹거리 산업 자체도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中 군사패권의 결과 생각해야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 시 주석이 작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이는 중국이 군사패권국이 되면 한반도를 어떻게 거칠게 다룰지를 말해주는 무서운 암시다. 중국 해군이 강해지면 언제고 태평양을 미 해군과 양분할 것이다. 이때 한반도 해역은 중국 해군의 세력권에 들어간다. 위대한 중화제국의 비위를 거스르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때의 경제적 보복이 아니라 무력 압박일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힘 없는 동남아 국가들을 무력으로 짓누르는 중국의 해양굴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중화제국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길은 한·미동맹밖에 없다. 지난 수천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겨우 지난 100년간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경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한·미동맹으로 자유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제발 다시 역사의 쳇바퀴가 뒤로 굴러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