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新자주노선을 우려한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오는 18~20일 평양에서 열린다. 올해에만 세 번째 만남이다. 이번 회담은 북핵 폐기 가능성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 속도와 방향성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남북관계 발전 속도와 방향성은 문재인 정부의 신(新)자주노선과 관련성이 높다. 신자주노선은 ‘선(先) 남북관계 개선, 후(後) 북핵 폐기’를 지향한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현 정부의 신자주노선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3차 남북한 정상회담이 확정된 직후, 문 대통령은 “연말까지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진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또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4·27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의결해 국회로 이송했다. 비준 동의안에는 경협 등 지출목록이 첨부됐다. 국회의 비준 동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신자주노선을 내세울 수 있는 충실한 자료가 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신자주노선이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판문점 선언은 정치적 선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두 나라 사이의 구체적인 상호권리와 의무를 합의한 조약으로 격상시켜 국회에 비준을 강요하는 것은 반(反)헌법적이다. 정부가 공식화한 선언을 차후에 국회가 동의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절차상 맞지 않다.

더구나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남북관계 개선은 공염불이었다는 게 지금까지 남북대화의 경험적 사실이다. 아직도 북핵 폐기의 시점은 설(說)만 난무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1년 이내”라고 했다는 김정은의 발언은 특사단 방문 이후 2021년 1월로 수정, 연기됐다. 북한이 선(先) 종전선언을 요구하면서 핵폐기에 필요한 절차는 밟지 않는 현실도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지난해 국제사회를 향한 북한의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이 지속됐다. 이때 국제사회가 내민 카드는 국제공조를 통한 최대한 압박이었고, 이는 북한을 사면초가로 몰아붙여 두 손을 들게 했다. 이런 대북제재의 끈을 느슨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제공조를 통한 최대한 압박에 구조적 허점을 만들었다. 북한산 석탄 밀반입 사건 등이 그런 것이다. 이는 우리가 북핵의 최대 피해 당사국이라는 점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신자주노선의 이행은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길 것이다. 정부는 판문점 선언 비준안에 첨부한 비용 추계서에서 “경협예산은 1726억원(2018년)에서 4712억원(2019년)으로 증액하고, 2년 동안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등에 총 6438억원을 쓰겠다”고 지출목록을 제시했다. 그러나 추계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철도·도로 인프라 사업에만 70조~153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국민 부담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눈가림은 비정상이며, 정상적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특히 인프라 투자는 자본과 장비 투입이 유엔의 대북(對北) 제재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신자주노선의 질주는 위험하다.

이번 남북한 정상회담은 비가역적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는 신자주노선 구상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핵이 있는 상태에서의 신자주노선’은 사상누각이다. 이번 회담은 오직 북핵폐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자주노선이 제대로 출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