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 손 놓고 있을 텐가
경기가 얼어붙고 고용이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뛰고 있다.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경제가 파탄 나는 조짐인데 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딴 데서 원인을 찾고 엉뚱한 대책이나 내놓고 있으니 미래는 더 암담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으로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이 줄을 잇고 실물 경제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집값 잡는다고 꺼내든 대출 규제나 세제 강화는 서울 집값을 더 밀어 올리는 기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뒤늦게 주택 공급 확대 방침을 밝혔지만 실제 주택 공급이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집값 급등 사이클이 끝난 다음에야 효과를 낼 것이다. 대책은 정말 없는 것인가.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책실패에 기인한다. 정권 붕괴는 물론 정책 이념까지 바꾼 악몽의 역사가 있다.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파탄을 일으켜 최악의 정부를 만들었다. 집권 세력이었던 좌파 사회민주주의가 몰락하고 1980년대 이후 우파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세계 경제 판도도 바뀌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추락하는 사이 일본은 덩치를 키워 1980년대 들어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미국과 유럽은 구겨진 자존심을 뒤로하고 일본의 경쟁력을 배우는 데 나서게 됐다. 미국과 유럽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한 방만한 재정·통화정책 때문에 고비용·저효율 경제로 추락한 반면, 일본은 산업정책으로 저비용·고효율 경제를 만들었다.

1970년대 미국과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지금의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석유위기를 빼면 상황이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규제를 강화해 생산과 고용을 위축시켜 놓고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 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압력만 키웠을 뿐이다. 미국은 단계적이지만 최저임금을 40% 이상 인상했고 기본소득보장 등으로 각종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한국처럼 소득재분배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규제정책과 방만한 재정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를 해소한다며 통화 공급을 확대했다. 여기에 석유위기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불을 붙였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엇박자는 사태를 악화시켰고 국민에게 고실업과 초고금리의 고통을 안겨줬다.

문재인 정부는 겁이 없는지 아니면 모르는지 스태그플레이션을 조장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 경제정책 3인방 모두 한가해 보인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은의 핵심 목표는 인플레이션 예방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물가불안 심리가 커진 상황은 외면하고 흘러넘치는 1100조원 규모의 부동자금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도 결국 통화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은 경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금리를 조정하는데, 한은은 저금리를 철통같이 유지하고 있다. 환금성이 좋은 서울 지역 주택 가격 급등도 인플레이션을 대비한 시장 반응이라는 점을 무시한다. 지방 집값이 잠잠하기 때문에 다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방은 공급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에 관한 한 시장이 정부를 못 이긴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경험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대출 규제와 세금 인상을 통해 급등하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무현 정부도 하지 않았던 소득주도성장이 야기한 물가불안 심리는 집을 사두는 이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도록 만들었다.

재정정책을 담당하는 부총리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여당에 떠밀렸는지 모르지만 마구잡이식으로 재정을 확대하고 있다. 재정 확대는 맞춤형으로 정교하지 않을 경우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없이 산업경쟁력만 떨어뜨리며, 일시적인 재정 지원을 영구적인 지원으로 바꿔 적자재정 구조를 만들 뿐이다. 경제 3인방의 오진과 엇박자가 최악의 정부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