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TX 개통만 기다리는 파주 운정신도시 > 대규모 입주 탓에 집값과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  /한경DB
< GTX 개통만 기다리는 파주 운정신도시 > 대규모 입주 탓에 집값과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 /한경DB
“2기 신도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부동산 전문가들은 2000년대 택지개발 성공·실패 사례를 참고해 새 택지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주 옥정·회천, 파주 운정, 김포 한강 등 2기 신도시 4곳은 서울 집값 안정에 별 도움이 안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울에서 너무 멀고 전철망도 없거나 충분하지 않아서다. 반면 서울 강북 뉴타운과 판교신도시는 성공 사례로 꼽았다.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서울 시내에 있거나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 강남 수요 분산에 톡톡히 기여했다.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택지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철망을 확실히 갖출 것도 주문했다. 2기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도 서둘러 건설해 2기 신도시의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수요 분산효과 미미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파주, 김포, 양주옥정 등 3개 2기 신도시의 입주물량은 3만5181가구에 이른다. 양주옥정(2038가구), 파주운정(1만964가구), 김포(2만2179가구) 등이다. 서울 연간 아파트 수요량인 5만 가구를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만한 물량이다.

하지만 수요자들이 외면하면서 아파트값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김포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달 전달 대비 0.29% 떨어졌다. 파주시는 같은 기간 0.46%, 양주시는 0.24% 하락했다. 적게는 7조원(양주신도시)에서 많게는 13조원(파주운정)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신도시들이 서울 집값 안정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주신도시 회천지구는 수요가 부족해 지구 지정 시점에서 10년 이상 지난 올해 용지 공급에 나섰다. 인천 검단신도시는 수요가 부족해 절반 정도만 개발하기로 했다.

서울 도심에서 반경 20㎞ 이내에 건설된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와 달리 반경 30~40㎞ 권역에 건설된 태생적인 입지의 한계가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그나마 판교 위례 등 서울과 접한 곳에 조성된 2기 신도시는 서울 수요 분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기서도 교통망이 제때 갖춰지지 않아 입주민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위례신도시는 정부 교통행정의 난맥상이 집약된 대표적 사례다. 2008년 수립된 광역교통계획이 10년이 지나도록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신규택지 제1조건은 서울 접근성… 광역교통망도 동시에 구축해야"
◆“교통 인프라 부족”

이처럼 열악한 입지여건을 보완하려면 GTX나 서울 지하철 연결 등 광역교통망 개선이 수반돼야 하지만 교통망 신설은 10년 가까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엔 아직 전철이 없다. 대중교통이 버스뿐이다. 광역버스(8600번, 1004번) 등을 타면 광화문까지 1시간을 훌쩍 넘긴다. 공기 지연으로 오는 11월 예정이던 김포도시철도(한강신도시~김포공항) 개통은 내년으로 넘어갔다.

김포신도시 주민 강휘호 씨(27)는 “서울을 오가는 데 2시간 넘게 걸리다 보니 서울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지옥”이라며 “신도시 안에 조성된 버스 노선도 배차 시간이 길고 노선이 한두 개에 그쳐 취업 후엔 서울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옥정지구와 회천지구로 이뤄진 양주신도시는 2기 신도시 중에서도 교통이 가장 열악하다. 옥정지구는 지하철은커녕 여의도·광화문 등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 향하는 광역버스도 없다. 7호선 도봉산역과 양주 옥정을 잇는 도봉산포천선 사업은 시공사 선정이 수차례 유찰돼 표류 중이다. 2009년 6월 입주한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는 서울 광화문까지 출퇴근 시간이 차로 1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검단신도시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한 중견 건설회사 대표는 “검단신도시는 용지 입찰에 참여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며 “서울과 바로 연결되는 전철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기반시설을 제대로 조성하지 않고 주택 공급에만 급급한 현행 택지개발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교통망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적재적소’에 택지 공급해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신규 택지지구를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8곳의 신규 택지 후보지 중엔 서울 집값 안정 효과를 보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지적이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정부는 공급 규모 부풀리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서울의 집값이 올라가는 건 서울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서울세력권’에 대한 수요자의 열망이 크기 때문”이라며 “도심지역을 개발하거나 서울 강남 등과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을 신규 택지로 지정해야 집값 안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정선/최진석/양길성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