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결심 공판에서 변호인이 검찰 진술조서의 신빙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잖아요. 검찰이 핵심 증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입맛에 맞는 내용을 받아낸 게 아니냐고. 재판 전략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봐요.”

지난 6일 열린 이 전 대통령 결심 공판을 지켜본 어느 중견 법조인의 촌평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측근들로부터 확보한 진술의 신빙성 여부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들이 검찰과 불법적인 거래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온 관련자들의 진술은 조서로 작성된다. 조서엔 검찰에 소환된 피의자·참고인들과 마주 앉은 검사의 대화가 문답 형식으로 적혀 있다. 법조계에선 피고인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검찰 조서를 형사재판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지속적으로 논란이 제기돼왔다.

검찰에선 관용적으로 ‘조서를 쓴다’고 하는 대신 ‘조서를 꾸민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말을 더듬는 모습부터 중간에 내쉬는 한숨, 잘못된 조사 사용까지 그대로 기록되는 녹취록과 달리 조서는 받아 적는 사람에 따라 적당한 편집을 거친다. 길게는 12시간 ‘마라톤’으로 이어지는 조사 과정을 모두 기록하기엔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에서다.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은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진술의 취지 자체가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수사 과정에선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혐의 구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녹취록으로 풀면 A4 한 장이 넘는 분량의 대답이 조서에선 단 2~3줄로 요약된다. 심한 경우 ‘예’ 또는 ‘아니오’로만 기재되기도 한다. 물론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조사를 마친 뒤 조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열람·확인한 후 날인이나 서명을 받도록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검찰에 토를 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MB 재판서 논란 된 검찰 조서
조서라는 단어는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렵다. 대부분 선진국의 사법 절차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도기 때문이다. 과거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아낸 조서가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며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내달 5일 선고에서 조서의 신빙성을 얼마나 인정할지가 법조계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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