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韓·日, 너무 다른 규제개혁
전 세계를 봐도 동북아에 위치한 한·일·중처럼 산업 전면전을 벌이는 곳도 없다. 근대화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너희가 하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는 식으로 세 나라가 ‘산업 대(對) 산업’으로 맞붙어온 결과다. 이런 지정학적 특성에 대해 국가 간 혁신 경쟁을 연구하는 일단의 학자들은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는다. “피곤하겠지만 혁신하기엔 더 없이 좋은 환경 아니냐”고. 한·일·중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상업화를 시작하면 다른 나라도 자극받아 모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경쟁구도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가설은 “세 나라 모두 늘 긴장하면서 언제든 변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만약 경쟁국에서 들려오는 신기술 개발이나 상업화를 위협으로 느끼지 못하거나, 위협을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내부 갈등에 파묻히는 나라가 있다면 이 가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확 달라질 것이다. 그 나라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가 중국의 ‘굴기’를 쳐다보는 사이 일본의 ‘르네상스’ 소식이 들려온다. 경제지표, 기업실적 등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 경제 부활이 치밀한 ‘성장전략’의 결과라고 볼 만한 증거들이 잡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사태)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규제개혁이 그렇다. 일본은 지역단위 규제개혁 방식이라고 할 ‘국가전략특구’를 통해 도쿄권 규제를 걷어내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역특구법(여당)도, 뉴프리존법(야당)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수도권 규제’를 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특혜 시비로 날을 지새우는 ‘규제샌드박스’와 관련해서도 일본은 전 산업에 걸쳐 기업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파격적 방식으로 달려가고 있다. 국내에서 갈등이 첨예한 원격의료, 인터넷전문은행, 개인정보 규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미 실생활에서 규제완화를 체감하는 일본은 한국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시대 일본이 성장원천으로 꼽는 것은 규제개혁과 더불어,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이노베이션’이다. 고령화를 ‘부담’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고령화 이노베이션’으로 일본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은 그런 전략을 성공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미국과 중국이 인공지능(AI) 경쟁을 벌이는 동안 일본은 자신들이 강점을 보유한 로봇 기능을 확장하는 AI, 사물인터넷(IoT) 경쟁력 확보 등 일본만이 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그렇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리없이 진행되는 일본 기업들의 해외 인수합병(M&A) 트렌드 역시 일본의 독자 전략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미국이 불편해한다는 ‘중국 제조 2025’에 대해서도 일본은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본이 4차 산업혁명 최대 수혜국이 될 거란 전망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일본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했지만 더 이상 성장을 해내지 못하고 정체돼 있는 나라의 하나로 꼽았다. 일본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한국이나 걱정하라”는 반응을 내놨을지도 모르겠다.

살벌한 동북아 경쟁구도 관점에 서면 규제개혁은 우리 내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법 위에 공산당이 있다’는 중국은 그렇다 치고 같은 민주국가인 일본이 하는 규제개혁을 왜 한국은 못 하는지 정치가 답을 내놔야 한다. 특히 “내년은 3·1운동 100주년에 대한민국 건국(임시정부) 100주년이 된다”고 말하는 이 대표와 여당은 일본에 뒤지고 있는 규제개혁에 분노를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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