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톨스토이 육성 담긴 에디슨 축음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80회 생일을 맞은 1908년. 발명왕 에디슨이 그의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축음기를 선물했다. 초기 모델 ‘틴호일’을 개량한 실린더 축음기였다. “선생님의 육성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기계로 목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세요.”

톨스토이는 작품 녹음에 푹 빠졌다. 그의 목소리는 지금 들어도 생생하다. 카랑카랑하면서도 약간의 쇳소리가 나는 듯한 음색이다.

“자 나의 친구들이여. 저에게 오십시오. 저는 항상 당신들을 반길 것이고 항상 당신들을 좋아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 공부하십시오. 언제나 공부를 하게 되면 미래가 밝아질 것입니다. 항상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작품과 마태복음 구절 등 녹음

이 축음기는 모스크바의 ‘국립 톨스토이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목소리 앞뒤를 음악으로 장식한 그랜드 피아노는 박물관에서 가까운 ‘톨스토이의 집’ 2층에 보관돼 있다.

톨스토이는 첨단 기계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였다. 이보다 13년 전인 1895년에도 에디슨 축음기를 쓴 적이 있다. 한 사업가가 에디슨에게서 구입한 ‘완성형 축음기’로 자신의 작품 두 편, 러시아어 성경의 ‘마태복음’ 구절을 부인과 함께 낭독했다.

에디슨에 이어 축음기 기술을 발전시킨 독일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의 원반형 축음기 ‘그라모폰’으로도 넉 장의 레코드를 남겼다. 그는 잠언집의 한 구절을 50여 초 동안 낭독했다. 또 다른 대목을 프랑스어와 독일어, 러시아어로 각각 번역해 낭독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손재주도 좋았다. 그의 집에 있는 자전거는 직접 조립한 것이다. 그가 자전거를 배운 시기가 67세 때였으니 더욱 놀랍다. 이런 그를 좋아한 사람은 발명가뿐만이 아니었다.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작가 체호프와 고리키, 독일 시인 릴케와 그의 연인 루 살로메, 철학자 니체도 자주 방문했다.

간디에겐 비폭력 운동의 스승

인도의 간디는 톨스토이 작품에 감명받아 비폭력 운동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1909년 런던에서 보낸 첫 편지에서 자신의 활동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했다. 톨스토이의 《한 힌두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2만 부 인쇄해 배포하게 해 달라고도 했다. 톨스토이가 ‘영국인들이 인도를 지배하는 것은 인도인이 노예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자들을 묵인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책이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 ‘톨스토이 농장’이라는 공동체를 설립했다. 젊은 시절 영국식 신사복을 입고 다니던 그가 말년에 인도식 복장을 하고 옷을 물레로 직접 짜서 입은 것 역시 톨스토이의 영향이었다.

모레(9월9일)는 톨스토이의 190번 째 생일이다. 그 사이에 에디슨은 제너럴일렉트릭을 창업해 전기 혁명을 일으켰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모든 가정에 전기를 공급할 것”이라던 에디슨의 꿈은 “모든 가정에 컴퓨터를 보급하겠다”는 빌 게이츠의 정보 혁명으로 이어졌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올해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서 클래식 축제를 열며 톨스토이 육성 파일을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 세기의 톨스토이를 생각하면서 "모두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그의 명언을 다시 떠올려 본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