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제3의 세계화 물결과 영어 공용화
대만 정부가 영어를 중국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내년 정책을 확정해 시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반발이 적지 않지만 대만 정부는 과감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그렇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왜 영어를 공용어로 쓰려는 것일까. 공용화를 적극 지지하는 경제인 단체 ‘대만공업총회’의 2018년 백서에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백서는 우선 자원이 제한적인 작은 섬 나라가 그나마 국민 모두가 근검절약을 통해 경제적 기적을 이뤄냈다고 자찬한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라는 것이다. 시장이 작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는 데다 생산 원가는 높아 경제 전반이 탈출이 불가능한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투자 유치는 갈수록 어렵고 인구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판단이다. 일자리 부족으로 근로자들은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에 시달린다.

대만은 그 해답을 세계화에서 찾았다. 국경을 넘어 시장을 넓히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외국과 경쟁하자는 것이다. 그 해결책의 단초가 언어다.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언어다. 게다가 세계 20억 명이 컴퓨터와 의사를 소통하는 데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영어다. 영어로 소통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네바국제고등문제연구소의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제3의 세계화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한다.

제1의 세계화는 상품의 국제화다. 18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가 그 시기다. 선진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다. 제2의 세계화는 기술과 노하우의 국제화다. 정보통신 기술의 진보로 국제 협력이 쉬워지면서 기술과 생산 공정의 일부를 저임금 국가로 옮긴 시기다. 개도국이 급성장한 시기다.

제3의 세계화는 서비스 노동의 국제화다. 지금은 서비스 노동의 대부분이 한 국가 안에서 이뤄지지만 그게 국경을 넘어가는 단계다.

재택근무를 생각해보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원격지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컨대 미국에서 운영되는 웹사이트를 필리핀에서 관리하는 경우다. 비용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인력은 ‘업워크(Upwork)’나 ‘파이버(Fiverr)’ 같은 사이트를 통해 채용한다. 수천만 명의 프리랜서가 등록돼 있는 ‘서비스 노동의 이베이’ 같은 곳이다. 채용은 물론 업무와 임금 지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인터넷에서 처리한다.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절절매던 아시아 국가들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서비스 노동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이스라엘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 소규모 선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파이버가 이스라엘 기업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 바로 영어다.

단순히 홈페이지나 관리하는 게 서비스 노동이 아니다. 의학계는 이미 로봇을 활용해 원거리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케냐 의사가 미국 환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의료 상담을 한다. 원격 교육이나 법률 서비스도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의사, 변호사, 학자 등 고학력·고소득 직종도 모두 세계화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블루칼라는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방글라데시 청소부가 로봇으로 런던의 호텔 방을 청소하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자신의 집에 앉아 해외 근로자들과 경쟁하는 전대미문의 사회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언어 문제가 해결되는데 웬 호들갑이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일본 최대의 e커머스 기업 라쿠텐이 세계화를 위해 일본어 사용을 금지하고 영어를 사내 공식 언어로 결정한 게 벌써 8년째다. 괜한 일이 아니다. 언어가 같은 나라 간 교역량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보다 두 배나 많다고 한다. 언어 장벽이 사라지면 무역은 활발해진다. 생존의 문제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신뢰할 수 있는 높은 품질의 서비스 노동력을 갖고 있다. 관건은 그 노동력이 국경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뒷받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제3의 세계화 시대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과거와의 싸움에만 몰두하는 정부를 바라보면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