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을 앞세운 무차별 사정과 강압적 분위기에 실망한 엘리트 공무원들이 속속 공직을 등지고 있다고 한다. 이직을 위해 올 1~8월 재취업심사를 받은 공직자가 713명으로 전년 동기(385명)의 1.9배에 달한다.

‘엘리트 관료시스템’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한국의 장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을 일구는 데도 공무원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기인지라, 엘리트 공무원들의 이직은 문재인 정부에 적잖은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이탈의 원인이 된 적폐청산 전반에 대한 꼼꼼한 복기가 시급한 이유다.

켜켜이 쌓인 폐해를 털고 가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편가르기로 빠지지 않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적폐청산 과정에서의 비정상적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교과서 사태가 일례다. 교육부는 임명권자인 전임 대통령의 역점 사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관련자를 13명이나 수사의뢰했다. 상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과장급 이하 하위직 공직자도 6명이나 포함돼 논란을 불렀다.

적폐청산의 근본 원인을 찾고 개선하기보다, 인적 보복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문제다. 적폐로 몰린 전 정부 보훈처장은 네 차례나 검찰에 고발되면서 “이쯤 되면 숙청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아군’으로 분류된 공직자들은 승승장구했다. ‘별건’수사를 동원해서라도 성과를 낸 검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된 데서 잘 드러난다. 활동근거가 취약한 위원회의 ‘코드 민간위원’들이 청산을 주도한다는 불만도 공직사회에서는 광범위하다.

적폐청산이 민간 인재 유출로 이어지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원자력 마피아’로 몰린 인재들이 대거 중동으로 떠났다. 기업을 적폐로 보는 듯한 분위기를 피해 해외로 나가는 인재도 많다. 여러 부작용에도 ‘2기 내각’ 출범을 앞둔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또다시 ‘적폐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민심을 경청하지 못한 방향착오다. “경제가 어려우니 시선 돌리려고 그러느냐”는 야당 주장을 새겨야 할 것이다. 적폐청산이 공직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