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용기 1대가 그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침범해 강릉 동쪽 96㎞까지 비행한 뒤 돌아갔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나 중국 군용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4시간30분 동안 KADIZ를 제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다. 중국의 KADIZ 침범은 올 들어서만 다섯 번째로, 일상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공식별구역은 외국 항공기가 영공(領空)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정된 곳이다. 다른 나라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려면 해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는 게 관례다. 그럼에도 중국은 우리 군 당국에 사전 통보한 적이 없다. 매번 “통상적인 훈련을 왜 트집 잡느냐”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중국이 침범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제주도 남단을 침범해오다 올해 초부터는 동해안까지 올라오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침범이 평창올림픽 직전·직후, 남북한 정상회담, 미국 국방부 장관의 한·미 연합훈련 재개 시사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주요 사안들이 발생한 즈음에 이뤄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패권욕 과시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이 KADIZ를 잇따라 침범하며 ‘대한민국 흔들기’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매번 외교관을 불러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지만, 그때뿐이다. 지난해엔 국방부가 중국의 KADIZ 침범을 쉬쉬하다가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서야 관련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니 중국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시사한 미국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한국엔 “훈련 재개가 한국 이익에 부합하는 것인가”라고 한 것도 그만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드 보복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한 지 8개월 지났지만, 많은 분야에서 여전히 풀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국가의 존엄과 당당한 위상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중국 정부에 마땅히 해야 할 대응을 않는다면 무례함이 더 잦아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