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물싸움
날이 가물면 논바닥만 갈라지는 게 아니다. 농부의 마음도 쩍쩍 갈라진다. 폭염이 겹치면 더 애가 탄다. 올해도 ‘물싸움’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사달이 났다. 지난달 경북 영덕에서 물 문제로 ‘이웃 살인’이 일어난 데 이어 최근 봉화에서 ‘엽총 난사’ 사건이 터졌다.

옛날부터 가뭄 때마다 물꼬싸움이 잦았다. 물꼬는 논에 물을 대는 좁은 물길이다. 밤에 몰래 윗논의 물꼬를 막고 자기 논으로 물을 빼돌리다가 시비 끝에 난투극을 벌이곤 했다. 농사의 성패뿐만 아니라 가족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집안 간 패싸움까지 불사했다.

물싸움은 지역 대결로 번지기도 한다. 경상남도와 부산시는 남강댐 물의 부산 공급 문제를 놓고 오랜 갈등을 겪었다. 전라북도는 용담댐 때문에 충청권 자치단체들과 다툼을 벌였다. 경기도와 평택·용인·안성시의 평택 상수원보호구역 분쟁도 39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가 간 분쟁은 더 심하다. 세계 인구의 40%가 의존하는 214개 강은 두 개 이상 국가가 함께 이용하고 있다. 10개국의 생명줄인 나일강 유역 다툼은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가 공유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분쟁도 끝이 없다. 이스라엘·시리아·팔레스타인의 수원인 요르단강은 3차 중동전쟁의 원인이 됐다.

메콩 강을 둘러싼 중국·태국·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의 싸움은 ‘경제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매년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인도도 방글라데시와의 갠지스강 갈등으로 편할 날이 없다. 1980년대에는 인더스강 상류 펀자브 지방에서 강물 때문에 싸움이 생겨 1만5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물은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자원이다. 이웃 간 ‘물인심’에만 기댈 수 없다. 1966년 ‘국제하천의 물 이용에 관한 헬싱키 규칙’이 제정된 뒤로도 분쟁은 줄지 않고 있다. 물은 한 마을의 논밭 단위를 넘어 도시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문명권 전체의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8세기에 인구가 1500만 명이나 됐던 마야문명이 갑자기 몰락한 것도 심각한 가뭄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근 영국과 미국 연구팀이 호수 바닥의 침전물을 분석한 결과 마야의 멸망 원인이 오랜 가뭄과 이로 인한 물 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은 문명의 발상지이자 경제 발전의 젖줄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나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나왔다. 국가경영의 첫걸음 역시 물길을 잘 관리하는 치수(治水)에서 시작한다. 지구상의 물 가운데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의 양은 0.8%에 불과하다. “20세기가 석유전쟁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전쟁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