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랑은 행동이다
“오늘따라 표정이 왜 그래요?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 조선족 아주머니가 있었다. 한국에서 대리운전, 공사판 막노동 등 젊은 여성으로선 쉽지 않은 일까지 했던 맹렬 여성이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 어두운 표정으로 음식을 나르기에 사정을 물어봤다.

그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비밀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조선족 남자와 동거하며 아기가 생겼는데, 중국 국적의 남녀 사이에 동거로 생긴 아기는 무국적자 신분이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도 보낼 수 없고 의료보험 같은 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다. 설상가상 동거하던 남자가 중국으로 가면서 혼자 애를 키우느라 힘든 삶에 내몰렸다. 어느 날 공사판에서 일하던 홀아비 한국 남자의 구애에 아주머니는 혼인신고를 조건으로 동거하게 됐다. 아들에게 국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와 아들은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들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면서 툭하면 중국 외할머니에게 보내라는 얘기를 하더란다. 아주머니에게 아들은 그 어떤 보물보다 소중했기에 남편 대신 아들을 택했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다시 혼자가 돼 힘든 삶이 시작됐지만 그동안 모은 돈으로 다세대 반지하방을 전세로 얻었고, 그곳에서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연립주택 전체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전세금을 몽땅 날리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입주할 때 전세 등기 제도를 잘 몰랐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고민만 하다가 며칠 뒤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판사님께 탄원서를 한번 냅시다. 대한민국은 서민들의 아픔을 들어줄 겁니다. 일부라도 건질지 몰라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강압에 가까운 나의 독려로 아주머니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얼마 후 그는 다시 고민을 털어놨다. “재판정에서 진술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를 토닥이며 사정을 차근차근 얘기하면 길이 보일 거라고 조언했다.

꽤 오랜 날이 지난 뒤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전세 돈 모두 찾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재판정에서 딱한 사정을 말하며 눈물로 애원했다고 했다. 나중에 판사가 채권은행 담당자를 불러 설득했고, 채권은행이 동의해 후순위인 그의 전세보증금을 선변제해줘 돈을 돌려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경험은 내 삶에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기억이 됐다. 다시 ‘행복’을 찾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복무를 마친 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