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정치 언어에 멍드는 경제
다음 중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사람 중심 경제’에서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 건 무엇인가?

①노동자 ②자영업자 ③스타트업 ④중소벤처기업 ⑤대기업

정답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대기업은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게 ‘사람 중심 경제’라는 건 지난 1년간 대통령의 연설문이 말해준다. 아마존 애플 구글 등 글로벌 대기업은 대통령 연설문에 등장한 적이 있지만 국내 대기업은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대기업을 무슨 ‘괴물’이나 ‘투명인간’ 쯤으로 간주하는, ‘사람’이라는 다분히 정치색이 묻어나는 말 대신 ‘인적자본’, ‘기업가정신’ 같은 경제적 용어를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국내 벤처1세대가 증명하듯이 대기업은 ‘사내벤처’의 요람이자, 성공적인 인수합병(M&A)에 필수적인 ‘사내 기업가정신’을 기를 수 있는 최적지다. 벤처투자도 ‘대기업 주도 벤처캐피털’(CVC)의 성과가 일반 벤처캐피털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가 많다. 이런 대기업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람 중심 경제’는 시작부터 경제의 정상적인 작동을 멈추게 한 건지도 모른다.

대기업 중에서도 글로벌 다국적기업 반열에 올라선 기업이 갖는 의미는 또 다르다. 이들이 모국(母國) 경제력의 상징이요, 국가 브랜드로 통한다는 건 해외 순방을 다녀온 문재인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다국적기업은 수많은 다른 기업의 투자를 동반하는 ‘앵커(anchor)기업’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가마다 ‘투자 유치 1순위’로 꼽힌다. 각국 정부가 다국적기업이 투자에 참고한다는, 국제기구나 글로벌 연구기관이 내놓는 기업환경 등 ‘국가경쟁력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국가들로부터 “투자 좀 해 달라”는 요청에 시달리는 국내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 여당이 대기업을 때려잡아야 할 ‘재벌’이 아니라 ‘한국이 낳은 다국적 기업’으로 바라본다면 ‘투자 구걸’ 같은 유치한 논란 따위는 일어나려야 날 수가 없다. 역차별을 없애도 시원찮을 판국에 대기업의 투자·일자리 창출에 꼬리표를 붙여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건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정부 여당 내 일부 세력이 시민단체와 손잡고 투자 유인책, 규제혁신 등을 죄다 ‘특혜’로 몰아가는 것도 경제적 논리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투자 유인책이 특정기업 특혜라면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비용 대비 효과’ 계산이라도 내놔야 하지만, 그런 것도 없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사적 수익률’보다 더 높은 ‘사회적 수익률’이 기대돼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연구개발(R&D)투자 인센티브도 특혜가 되고 만다. 스타트업 창업이나 중소벤처기업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완화를 보는 시각도 원격의료 허용은 대형병원 특혜, 개인정보 활용은 대기업 특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는 정보기술(IT)기업 특혜라는 식이다. 그런 특혜 논리에 수많은 환자의 눈물, 스타트업 창업 기회, 금융소비자 후생 등은 단칼에 묻히고 만다. 공포감을 조성하는 ‘의료 민영화’, ‘개인정보 유출’ ‘대주주 사금고화’와 같은 해묵은 정치적 프레임만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규제완화에 따른 파생적 투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기대효과 분석이 설 땅이 없다. 이들 세력은 혁신성장을 형해화하려는 게 분명하다.

기업도 상처를 받는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자국기업을 노골적으로 편들면서 당하는 차별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안에서까지 찬밥이면 그 서러움은 작은 기업, 큰 기업 따질 게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벌써부터 대통령의 발목을 잡으려는 세력의 기세가 만만찮다. 이번 기회에 정치적 언어일랑 깨끗이 걷어내고 경제는 경제로 보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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