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자율주의 정부'로 진화해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일로 1년3개월이 됐다. 아직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정권의 내공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15개월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돼 가고 있다”는 시각과 “1년 만에 이만큼 추락시켰으니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시각으로 나뉜다.

이런 상반된 평가는 정부 역할에 대한 원칙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하고 있는 ‘국가주의’ 논쟁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는 김 위원장 비판에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주의라는 비난은 어불성설”이라며 “국가의 (긍정적) 역할과 국가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반박한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개인과 시장에 맡겨도 될 일을 지나치게 정부가 개입해 민간의 자율을 해치고 결국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국가주의 비판에 대한 민주당의 반론은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 정부 개입으로 더 나아진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더 국가주의적이었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반론은 반론이 아니다. 또 ‘국가의 긍정적 역할’이 있는데 그것을 국가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도 만족스럽지 않다. 정부가 ‘먹방’ 프로그램 내용을 규제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북한산 석탄 수입에 정부, 공공기관, 기업이 관련돼 있는데 정부가 모니터링해야 할 사안은 놓친 채 과도하게 시장에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합당한 반론이 아니다.

핵심은 ‘국가주의 대(對) 자율주의’ 가운데 무엇이 옳으냐다. 과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이유는 국가가 고급 정보와 우수 인력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기업은 정부보다 더 뛰어난 정보망과 실패를 스스로 교정할 능력도 갖추고 있다. 시장 실패에 대해 노벨상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시장 자율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21세기 자율 성장 시대에 국민은 우유를 먹여 주고 콧물을 닦아 주는 유모가 필요한 갓난아기가 더 이상 아니다. 아버지 같은 정부의 온정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도 유모국가적 성향이나 온정주의 정책을 양산하며 포퓰리즘 정권이란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상황판, 정부 보조금으로 유지하는 일자리, 대기업 지배구조 조정, 시혜성 전기요금 인하는 시장과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나은, 겉으로만 정의로운 포퓰리즘 정책들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은 ‘착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노조에만 이득이 되고, 구직자에게는 노동의 기회 자체를 없애는 ‘나쁜 정책’이다. 청년일자리 대책도 대표적인 국가주의 정책이다.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이 기저에 깔려 있다. 집값을 잡겠다는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통제는 정부가 해야 하고 정부가 할 수 있다는 정부 만능주의가 실패의 핵심이다. 일자리 대책으로 수십조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직 단념자 수가 50만 명을 넘겨 최고치를 경신하는 결과를 낳았고,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은 서울 지역 집값만 올리는 결과를 맞았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시장은 반대로 반응하며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은 ‘강한 국가, 약한 시민사회’의 ‘과대성장 국가’로 국제 학계로부터 비판받았다. 그러나 촛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도 공무원 수를 최대로 늘리고, 내년도 정부 예산을 최고로 증액하고, 청와대 비서실을 키워 ‘청와대 정부’로 비판받으면서 국가주의에 몰두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하다. 국가주의는 공무원의 권력 남용, 심각한 수준의 관료 부패, 정책 실패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정부가 기업을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규제에만 몰두하면 기업은 클 수 없다. 규제는 작게, 경제적 자유는 크게 만든 2018년 경제자유도 최상위 4개국인 홍콩, 싱가포르, 뉴질랜드, 스위스의 성공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국가주의 정부에서 자율주의 정부로 진화해야 신바람 난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위기 극복에도 앞장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