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사적 영역 침탈하는 비대한 국가
해를 더해가면서 정부는 계속 비대해지고 있다. 지난 5월 말 각 부처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9년 예산의 총지출 요구 규모는 458조1000억원으로 2018년 428조8000억원에 비해 6.8% 증가했다. 한국은행 등 여러 연구기관이 내놓은 2018년 성장률 전망이 3% 또는 그 이하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예산 규모는 몇 년째 성장률을 크게 능가하는 팽창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덩치만 커지고 있는 게 아니다. 사적 영역에 대한 정부의 침탈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영업비밀인 프랜차이즈 공급가, 택배요금, 통신비 등의 원가 공개를 압박하는가 하면 은행 지점 폐쇄와 같은 사소한 일조차 정부의 허가를 받게 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TV와 인터넷의 ‘폭식 조장 미디어’, 이른바 ‘먹방’과 광고에 대해서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시시콜콜 간섭하는 큰 정부가 과연 바람직할까. 두 가지 이유에서 대답은 ‘아니다’이다. 첫째, 비대한 정부는 그 자체가 문제일 뿐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둘째,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세계에서는 정부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최선의 정책이나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극히 제한돼 있다.

정부는 언제나 국정 목표를 달성할 사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예산을 늘린다. 하지만 정부 부문이 사용하는 돈이 많아지면 당연히 민간 부문에서 사용할 돈은 줄어든다. 자칫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이나 투자가 위축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산이 반드시 착한 의도에서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의 이기심을 지닌다고 가정하면 그 이유만으로도 예산은 늘게 마련이다. 직접 벌지 않고 국회로부터 받은 돈을 쓰는 정부는 유인구조상 예산을 늘리기 위해 ‘과잉생산’하도록 돼 있다. 부처의 예산이 커지면 소속 공무원에게 떨어지는 떡고물도 커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감시를 맡은 정치인도 소속 상임위원회 소관 부처의 예산이 커지면 그만큼 출신 지역구에 가져갈 사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묵인하기 일쑤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통제하는 자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민간 부문에서도 경제의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더 많은 정부 자원이 자신들에게 배정되게 하려는 ‘지대(地代) 추구’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는 점이다. 지대 추구는 그자체로 비생산적인 경제활동이기 때문에 이에 투입되는 자원은 사회적 순손실이 된다.

규제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민간 부문에 행사하는 힘이어서 계속 늘어나기 마련인데 이는 시장을 위축시킨다. 때로는 규제 대상이 규제기관을 ‘포획’해 버리면 사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포획은 규제 비용이 다수에게 확산돼 있으면서 혜택은 소수에게 집중될 때 흔히 일어난다. 심지어 직접적인 뇌물이 아니더라도 퇴직 후의 취업을 위해 공무원 스스로 포획 대상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적폐의 하나로 꼽히는 ‘관피아’니 ‘입피아’니 하는 게 이렇게 생겨난다.

정부의 예산이나 정책이 오로지 선의로만 포장돼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과연 기대한 결과를 끌어낼지도 의문이다. 단적인 예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해 저임금 노동자의 복지를 향상한다는 착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의 노동 기회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좋은 뜻에서 출발한 정책이 기대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빚는 것은 정부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제도와 유인구조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서울 강남 부동산 대책도 같은 이유에서 실패했다. 세금 폭탄으로 가격을 잡으려 한 정부 정책은 한동안 성공하는 듯했지만 강남 부동산 가격은 최근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수요 억제책도 미진했지만 결정적으로 안전진단 강화로 신규 공급을 차단한 결과였다.

정부가 진정으로 선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나서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에서 벗어나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살고 일자리도 생겨나고 소득도 올라가고 경제도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