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의 자식 교육법
“명기야! 지금 안 자면 부엌으로 잠시 나오너라.”

개학을 앞두고 밀린 겨울방학 숙제를 하다가 어머니의 부름으로 부엌에 갔다. 밤 11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낮엔 옷가지와 화장품을 이고 방문판매를 다니기도 하고, 주택 건설현장에서 건축감독도 하는 등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셨다. 저녁에는 일수 수금하는 일을 하셨기에 늘 밤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그날 어머니는 식은 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 양푼에 담고 김치와 두세 가지 반찬을 챙기셨다.

“집 부근에 거지가 가마니를 덮고 추위에 떨고 있더라. 뜨거운 거라도 조금 먹여야겠다. 저러다 영하의 추위에 얼어 죽겠더라.”

나는 소반을 들고 추위에 덜덜 떨면서 앞장서 가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곳은 신축 중인 집이라 문짝도 없고, 벽도 완전하지 않아 추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거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났다. 얼마나 추웠는지 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옷은 땟물에 절어 있어 상거지 행색이었다. 그는 소반을 받아들자마자 뜨거운 물에 말아 많은 양의 밥과 반찬을 정신없이 먹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그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렵게 사노?” 하시며 혀를 찼다. 당시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어머니는 항상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옷가지와 화장품만 팔아서는 자식 교육시키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대구 서문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빚을 내 직업소개소를 차리셨다.

그런데 가게를 열자마자 패거리가 찾아와서는 어머니를 겁주며 돈을 뜯어가려는 일이 발생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어머니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아지매?” 갑자기 패거리 중 나잇살이나 먹은 리더가 어머니를 알은체했다고 한다. “아지매! 제가 작년 겨울에 아지매 집 부근에서 밥 얻어먹은 놈입니다.”

그러고는 무리를 데리고 나갔단다. 그들의 위협에 혼이 난 어머니는 고마움에 주머니에 있는 몇천원을 꺼냈다고 한다. 그는 한사코 마다하면서 “이러지 마세요! 아지매는 저를 인간 취급해준 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그 얘기를 하시면서 “남에게 베풀어 손해 보는 일 없다는 말이 사실이더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몸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던 어머니의 인간 사랑이 자식 교육이었고, 내 삶을 아우르는 가치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