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증권부장
[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무형자본의 시대… '삼바 사태' 읽기

지난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애플의 자산(6월 말 기준)은 3491억달러다. 이 중 현금과 각종 금융상품이 2435억달러이고, ‘전통적 자산’인 공장과 설비는 381억달러에 불과하다. 자산의 11%, 시가총액의 4% 수준이다. 다음 번 ‘시총 1조달러’ 후보인 아마존은 주가수익비율(PER)이 144배에 달한다. 통상적인 자산과 이익 기준 가치평가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수치다.

이들의 기업 가치엔 기술개발에서 비롯한 아이디어와 노하우, 디자인, 브랜드, 모방하기 힘든 내부 프로세스, 훈련받은 인재 등 회계상 수치로는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들이 반영돼 있다. 이런 자산이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으로서 향후 회사 성장과 이익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린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

조너선 해스컬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비즈니스스쿨 교수와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영국 혁신재단 네스타 정책연구팀장은 무형자본 투자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고, 나라 경제에 점점 더 기여하는 세상을 ‘자본 없는 자본주의(capitalism without capital)’로 칭했다. 신기술이나 인력 등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성과를 단기간에 측정하기 어렵고, 성공 불확실성도 크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내다보고 무형자산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곳도 있다. 대부분 지식기반 산업에서 인재는 핵심 자산이지만, 회계적으론 이익에 부담을 주는 ‘비용’일 뿐이다. 유형자본 시대에 만들어진 회계시스템이 현실과의 연관성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선 정보기술(IT)과 함께 대표적 성장업종으로 꼽히는 바이오 분야에서 회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진행 중인 바이오주에 대한 금융감독원 테마감리의 핵심은 연구개발(R&D)비를 자산으로 볼 것이냐, 비용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다.

미국 회계기준은 대부분 R&D를 비용처리토록 하지만, 한국과 유럽 등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IFRS)은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R&D가 미래 수익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내용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의 재량에 맡긴 것이다. 회계가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보다 가까이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선 IFRS가 ‘자본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 더 맞는 제도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고 제도만 선진적일 땐 부작용이 생긴다.

투자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만 해도 그렇다. 검찰 조사로 넘어간 공시 위반 건은 논외로 하고, 금감원이 문제 있다고 했지만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다시 살펴보라고 한 자회사 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변경 건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테마감리 대상인 바이오 상장사들은 R&D 회계처리를 각자 판단대로 했다. 회계법인들이 감사도 했다. 금감원은 그 ‘판단의 적정성’을 몰아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바이오 주가는 요동치고 투자자들은 천당과 지옥을 경험 중이다.

어떤 기업은 당장 유리한 쪽으로 재량의 범위를 활용하고, 회계법인은 기업 눈치를 본다. 금융감독당국은 정권에 따라 판단이 움직인다. ‘정치적’이란 얘기까지 듣는다. 그 사이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커진다.

무형자본 시대엔 그에 맞는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인프라다. ‘사회적 자본’이 덜 성숙해 서로의 판단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후 불확실성보다는 당국의 사전 가이드라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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