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 입시제도로 갈 것인지를 두고 3개월여 진행한 ‘공론 조사’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종료됐다. ‘수시·정시 비율’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의 현안에 490명의 시민참여단이 머리를 맞댔지만 오차범위를 넘는 ‘다수안’ 도출에 실패했다. 현재 중3 학생들부터 적용받게 될 새 입시안을 둘러싼 혼란은 진정되기는커녕 증폭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판단 유예’는 예고된 참사다. “말이 좋아 공론화지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던 우려가 현실화된 데 불과하다. ‘대입제도 개편’은 교육 전문가들에게도 최고 난도의 문제로 손꼽힌다. 핵심 현안을 시민들의 며칠간 합숙토론으로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공론 주제와 무관한 시민들에게 합리적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반발이 진보·보수 교육감 가릴 것 없이 광범위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불복종하겠다는 시민단체도 줄을 이었다.

‘재재재하청’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공론수렴 구조에 대한 비판이 특히 높았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위임한 ‘대입 개편방안 결정권’이 순차적으로 대입개편특별위원회와 공론화위원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490명의 시민참여단은 공론화위로부터 최종적으로 선택권을 넘겨받았다. 현 정부의 우호세력인 이른바 ‘진보성향’ 시민단체들까지 “어처구니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전문적인 식견을 믿고 정부에 행정을 맡겼는데, 다시 시민들에게 결정해 달라는 건 인기영합이자 책임회피일 뿐이라는 불만이었다.

‘결정 장애’로까지 불리는 교육부의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부 기재 항목, 학교폭력 대책,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등의 민감한 교육사안이 줄줄이 시민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공론화를 통한 숙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공론화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은 원전 중단 공론화 과정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공론화라는 이름의 책임회피가 전 부처에 걸쳐 광범위하다. 공론(公論)을 공론(空論)으로 만들어버린 정부의 결정장애가 더는 반복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