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원이 바이오벤처 창업 허브돼야
지난 주말 싱가포르에서 척추 플라즈마 디스크 감압술에 대해 특강을 하고 돌아왔다. 이 시술은 기구와 시술법이 우리 의료진에 의해 최초로 개발된 것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의사들이 척추 디스크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임상의료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간이식 성공률은 세계 최고이고, 세계 제일의 임상시험 도시가 미국 뉴욕과 휴스턴에서 서울로 바뀐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임상치료술이 뛰어나 시험 결과의 신뢰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뛰어난 임상 실력과 최고의 정보기술(IT)을 자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인 셈이다. 병원의 임상결과와 기초연구에 IT, 인문학까지 통합돼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있으며 이것은 곧 바이오 창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병원이나 클리블랜드 클리닉 같은 세계적인 병원들은 진료에서는 적자를 보지만 바이오 창업과 기술이전 등 연구를 통해서는 흑자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들도 진료보다는 세계적인 연구를 통해 수익을 내고 발전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의 씨앗을 키우는 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병원의 연구개발 성과물로 바이오 창업을 하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뇌가 손상됐을 때 상처회복에 관여하는 물질을 찾은 세계 최초의 기초연구가 임상과 결합돼 뇌 손상의 후유증을 막는 신약 개발 벤처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 벤처는 창업 2년 만에 그 가치가 1000억원대로 평가받을 만큼 주목받고 있다. 만약 신약 개발로도 이어진다면 1조원 가치의 벤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바이오 창업이 매년 수십 개씩 일어난다면 언젠가는 바이오의 삼성, 현대 같은 세계적인 회사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병원들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그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한 창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뇌 손상 후유증을 막는 신약 개발 벤처도 병원이 직접 창업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설립한 산학협력단 산하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우회 창업했다. 산학협력단은 그 수익의 사용범위가 제한돼 있어 병원으로 재투자할 수 없다. 기술 실용화에 성공해도 연구수익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 더 큰 연구에 투자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다. 창업은 되지만 투자가 선순환해 발전할 길이 없다면 창업의 물줄기는 말라버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정부는 연구중심병원에 의료기술 특화 사업화와 창업지원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산병(産病)협력단’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산병협력단이 생기면 병원의 연구개발 성과가 기술개발로 이어지는 성공가능성을 높이고, 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으며 그 수익을 병원의 연구개발에 재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가 마련된다. 병원의 연구성과가 논문과 ‘장롱특허’에 머물지 않고 좋은 의료기술로 실용화된다면 산업발전과 더불어 국민의 건강증진과 의료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를 웃돌고 있다. 금융뿐 아니라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들을 대거 유치한 결과다. 국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끄러운데, 싱가포르는 바이오산업 육성을 통해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있다. 의료기술을 가르치러 갔지만, 더 큰 것을 배워 온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