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증가율 1.3%로 한 8차 계획
5년 전 적용됐다면 지금은 블랙아웃
4차 산업혁명 등 수요 폭발 대비해야"

박주헌 < 동덕여대 교수·경제학 >
[시론] 탈원전 5년 후 '전력피크' 넘을 수 있겠나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전력 수요는 고공행진이다. 급기야 수급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공급예비율이 7.7%까지 내려가고 예비전력은 700만킬로와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전력수급 위기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값이 예비전력 500만㎾이므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까지 내몰린 판이다. 이런 수급 불안의 원인을 놓고 탈원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의 가동률을 낮춰 위기를 초래했고 위기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정지 중인 원전을 돌려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난과, 이번 위기는 탈원전과 관계없고 여전히 관리 가능하다는 주장이 격돌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면서 원전의 가동률이 예년에 비해 크게 낮아져, 공급능력이 부족해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80% 안팎이던 원전 가동률은 현 정부 들어 54.8%까지 떨어졌다가 지난달엔 그나마 67.8%로 높아졌다. 8개 이상의 원전이 정지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다. 예년과 같은 수준에서 원전을 가동했다면 수급관리가 그만큼 여유로웠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탈원전 정책에 책임 일부를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원전의 정비 일정은 연간 정비계획에 의해 사전에 결정되고, 전력수급 상황에 따른 발전소의 추가 가동은 아주 자연스러운 수급관리 기법이다. 더구나 탈원전 정책은 향후 약 60년에 걸쳐 시행될 정책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오히려 발전소 건설에 짧아도 대략 5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수급구조는 과거 정부 정책의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탈원전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5년 이후다. 만약 현재와 같은 탈원전 정책이 5년 전부터 시행됐다면, 올여름 전력 수급은 어땠을까? 탈원전 정책의 실행계획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8차 계획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전력수요 증가율을 과거 계획에 비해 대폭 낮췄다는 점이다. 수요증가율은 원전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원전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원전 증설을 위해 수요증가율을 지나치게 높게 가정한다고 비난한다.

수요전망이 중요한 이유는 수요전망치에 적정 설비 예비율을 더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획된 설비 용량이 실제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면 전력수급 위기가 초래되는 것이다.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과 같은 전원구성 이슈는 그 다음 문제다. 전체 설비용량이 모자라면 적정 전원구성도 모두 허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원전 정책이 5년 전부터 시행돼, 8차 계획에서 설정된 전력수요 증가율 1.3%가 5년 전에 작성된 6차 계획에 적용됐다고 가정하면, 2018년 최대 전력수요는 대강 82.1기가와트(GW)로 추정된다. 여기에 예비율 22%를 반영하면 설비용량은 100.1GW가 되고, 통상 공급용량은 설비용량의 9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8년의 공급용량은 90.2GW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달 24일 최대 수요 92.5GW에 미치지 못하는 공급용량이다. 대정전의 위험에 노출됐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화되지 않을 가상의 시나리오다. 왜냐하면 지난 5년 동안 실제로 건설된 발전소 대부분은 그 이전 계획에 의해 확정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전력수요 전망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설정된 시나리오다.

탈원전 정책을 반영한 8차 계획은 낮은 전력수요 증가율을 근거로 2022년 이후 설비용량이 거의 늘어나지 않고 정체 상태에 머무는 것으로 잡고 있다. 전력수요 증가율을 낮게 설정한 핵심 논리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하락이다. 하지만 올 2분기 증가율이 0.7%로 곤두박질쳤지만 실제 전력수요는 전망치를 매일 뛰어넘고 있는 현실과 날로 더워지는 여름, 4차 산업혁명 도래, 전기자동차 확산 등을 생각하며, 향후 전력수급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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