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데스크 시각] 화웨이가 던지는 메시지
한국이 내년 3월 세계 처음으로 5세대(5G) 통신 서비스를 도입한다.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SK텔레콤, KT는 5G 네트워크 구축용 장비로 화웨이 제품을 채택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 통신사에 화웨이 제품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처럼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반대론이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기반한 통신업계의 비용절감과 이에 따른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 화웨이 제품을 도입해도 괜찮다는 찬성론도 있다. 두 진영의 목소리는 청와대 청원게시판까지 달군다.

IBM 어깨 타고 세계 1위

반대론자들은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중국 인민해방군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화웨이가 중국군이나 중국 정부와 연계해 5G 장비로 국가 기밀과 개인정보를 빼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화웨이의 급성장 배경을 파고들면 더 엄중하게 다가온다. 런정페이 회장은 44세 때인 1987년 2만1000위안(약 365만원)을 손에 쥐고 창업했다. 26년 만인 2013년 화웨이를 글로벌 1위 통신장비 업체로 올려놨다. 지난해 화웨이는 세계 시장 점유율 28%를 기록했다. 스웨덴 에릭슨(27%), 핀란드 노키아(23%)는 화웨이 뒤에 서 있다.

화웨이의 기술 경쟁력은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끌고 있다. 2016년 110억8000만달러로 에릭슨(38억달러), 노키아(59억달러)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마이크 로저스 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은 2012년 화웨이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그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10년 후 화웨이가 유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화웨이라는 호랑이를 키운 것은 미국 IBM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BM을 ‘화웨이의 동맹’이라고 표현했다. 6년 전 찰스 딩 당시 화웨이 미국 담당 수석부사장은 1997년부터 IBM과 밀접하게 협력했다고 밝혔다. “IBM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화웨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IBM으로부터 R&D, 제품 개발, 공급망과 재무관리 등 서구식 핵심 경영기법을 배웠다고 했다.

일례로 IBM은 2000년 화웨이와 통신장비용 컴퓨터 칩과 정밀기술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2011년엔 화웨이가 스마트폰 사업을 확장하도록 자문했다. 왜 그랬을까.

시간도 공간도 없는 한국

IBM이 대형 컴퓨터 사업에서 글로벌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거대시장 중국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GE와 GM이 중국에 진출하려고 자산과 기술을 중국 업체에 제공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WSJ는 전했다. 화웨이 역시 자국 내수시장 접근권을 미끼 겸 무기로 삼은 셈이다.

《축적의 길》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공과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선진국이 원천기술을 개발하느라 오랜 기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한 시간을 중국은 공간의 힘으로 압축한다”고. “선진국의 축적된 시간도, 중국의 공간도 없는 우리가 걱정이다”는 그의 지적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맨손으로 쌓아올린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공정 기술을 정부가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연구원들이 고통과 열정으로 만든 세계 1등 반도체’를 협력업체들을 착취한 결과로 여당 원내대표가 뭉뚱그려 단정해버리는 한국 말이다.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