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이 -3.5%로 추정된다는 한국은행 분석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온 배경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대외교역이 전년보다 15% 급감하며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교역이 줄어든 이유는 물론 미국 중심의 유엔 대북제재 때문이었다.

국제 제재가 지속될 경우 북한 경제가 갈 길은 뻔했다. ‘장마당’ 확산으로 생필품 공급이 늘었고, 이로 인해 경제가 조금씩 개선돼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석탄 등 주력 수출품의 선적이 차단당하자 바로 사정이 달라졌다. 폐쇄·고립 경제의 파멸적 행보는 북한뿐 아니라 어디서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북한이 비핵화 협의에 소극적인 것도 전술적 행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석 달간 세 차례에 걸친 김정은-시진핑 회담으로 중국이 제재에서 이탈 기미를 보이자 북한은 덜 다급해진 것이다. 대북 제재는 원유와 식량의 보급루트를 쥔 중국에 크게 좌우돼온 게 주지의 사실이다.

비핵화 후속 협의가 겉돌고 북한의 행보도 달라지면서 우리 정부가 다급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험구(險口)’도 있었고 ‘이산가족 상봉 차질’ 으름장도 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북한이 대화에 나오게 된 배경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재가 이행되지 않는다면 성공적 비핵화의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유엔 발언도 그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산 석탄 반입과 금수품을 실은 선박들이 한국 영해를 제약 없이 통과한 것에 대해 우회적 경고도 보내왔다.

이런 판에도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 부분적인 제재 면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대화 유지’ 차원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외교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국으로 달려가는 것보다 원칙을 고수하는 게 한·미 공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시적 비핵화 전에는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점, 최소한 비핵화 일정이라도 명확해질 때라야 제재 해제 논의도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철도, 산림녹화 등에서의 남북 간 협력 논의도 국제 제재의 흐름과 따로 가면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실질적 변화가 없는 판에 ‘제재 완화’를 외치다 오히려 우리가 제재 받는 황당한 상황이 빚어져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