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들의 반대로 막혀 있는 원격진료와 관련해 “의료계와 논의해 원격진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장관 후보자 시절 인사 청문회에서 “원격진료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와는 크게 달라진 발언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언급대로 원격진료가 확대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박 장관의 발언은 여러가지 ‘단서’를 단 것이어서 원격진료 허용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의료계와 논의하겠다”, “시범사업을 하겠다”,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것 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원격진료를 가로막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 단서들이다. 의료계는 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정부는 시범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계적 접근도 정책 불확실성만 높일 뿐이다.

더구나 박 장관의 발언은 전임 복지부 장관들이 했던 말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때 “대면(對面)진료 보완책으로 추진하겠다”(정진엽), “원격진료 기본 방향에 동의한다“(문형표), “원격진료 허용하겠다”(진영), 이명박 정부 시절 “노인인구와 의료비 급증을 고려해야 한다”(임채민)”,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을 위해 필요하다”(진수희) 등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더구나 원격진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었다. 그때와 비교해도 장관들의 원격진료 발언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원격진료를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다면 바로 원격진료 허용 조건으로 붙은 단서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좌파 시민단체와 의사들이 원격의료를 ‘의료 민영화’라며 반대한다지만, 지금의 여당이 야당 시절 부추긴 프레임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원격진료가 의료 민영화와 무관하다는 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원격진료에서 앞서가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시범사업’이나 ‘단계적 접근’을 벗어난 담대한 조치를 내놔야 한다. 의료혁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