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은 양립 불가
건설 경쟁력 상실한 美서 교훈 얻어야

이익환 < 前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
[기고] 原電산업 생태계 붕괴, 미국 전철 밟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脫)원전’을 선언했다. 곧바로 공정률 30%인 신고리 5, 6호기 건설도 중단됐다. 이후 공론화위원회의 ‘건설 재개 결정’이 나왔지만 건설 작업이 3개월 이상 중단되면서 추가로 발생한 3000억원의 건설비와 공기 지연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고리 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설계와 책임 아래 건설됐다. 미국에선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5기의 동일 설계 원전이 60년 운전 추가승인을 받아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전력회사는 경제성만 있다면 60년 후에 20년 추가 운전 승인을 받을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40년을 운전하고 폐기 처분 결정을 내렸으니 말이 되는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재개됐지만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계획됐던 신규 원전 6기는 빠졌다. 부지가 확정된 신울진 3, 4호기와 경북 영덕의 천지 1, 2호기가 제외됐다. 당장 신규 원전 건설이 없으니 원전 산업체는 물론이고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원전 산업체에선 전문인력의 이동이 진행 중이다. 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규 원전을 준비하던 많은 인력이 필요 없게 됐다. 주기기 공급업체 등 주계약자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600개 이상의 국내 전문 하청업체들의 사정은 더 딱하다. 원전산업과 무관한 사업을 찾거나 아예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또 전문인력이 필요 없으니 10여 개 대학의 원자력공학 관련 학과는 자연히 폐과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이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원전 1호기 완공식이 현지에서 거행됐다. 문 대통령도 참석해 우리의 우수한 원전기술을 자랑하며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국내 두 번째 원전인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이었다. 월성 1호기는 법적으로 2022년까지 운전하게 돼 있는데 여당의 지방선거 압승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의 공문에 의해 한국수력원자력이 예정에 없던 긴급 이사회를 열어 조기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이는 명확한 법규 위반이다. 월성 1호기는 7000억원 이상 신규 투자를 한 바 있다. 고리 1호기보다 손실이 더욱 클 것이다.

정부는 원전수출에 앞장서는 듯 보이지만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일지 모른다. 원전을 구매하고자 하는 국가에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다. 40년만 운전하고 폐기하는 원자로기술, 더욱이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 나라의 원전기술을 왜 도입하겠는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후 지난 1년여간 연매출 26조원 규모의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학계, 연구계, 산업계 등 약 5만 명의 원전산업 인력이 갈 곳을 잃고 있다. 한 번 붕괴된 원전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그마저도 이전의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5년간 원전 건설을 하지 않다 재개한 미국은 경제성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다. 1990년대 원전 건설을 중단한 뒤 관련 기자재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산업 생태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부품을 조달해야 하는 형편인 미국은 가장 값비싼 원전을 짓고 있다. 그런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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