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승강기 제조사인 쉰들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하기 위한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지분 15.87%)인 쉰들러는 현대그룹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유상증자가 단순히 ‘경영권 방어’ 목적이었는데도 금융감독원이 승인해 준 것이 불법이라며 ISD 제기를 추진 중이다.

2004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에 투자를 시작한 쉰들러는 지분을 꾸준히 늘리며 인수합병을 시도해왔고, 그 과정에서 현대그룹과 자주 충돌했다.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가 부당하다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2014, 2015년 유상증자에도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그러다가 금감원이 유상증자를 막지 못해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뒤늦게 ‘ISD 카드’를 빼든 것이다.

업계에서는 쉰들러의 ISD가 다소 황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유상증자가 법에 따라 행해졌을 경우 금융당국은 제동 걸 이유가 없는데 이를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유상증자 건은 이미 법원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ISD라는 무리수를 들고나온 것은 현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편승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 정부가 지배구조 개편을 비롯 재벌 개혁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고 과거 대기업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에 유리하게 전개됐던 사건을 대부분 ‘적폐’로 규정하고 나서자 이런 분위기를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재벌의 무리한 경영권 방어’를 금감원이 저지하지 못했으니 정부가 책임지라는 식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 비슷한 이유로 ISD를 제기했다.

최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외국 투자자들의 ISD 제기가 줄을 잇고 있는 데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칫하다간 국가배상금은 물론 대기업 지배력까지도 외국 자본에 줄줄이 내줄 판이다. 누구를 위한 ‘재벌 개혁’이고 무엇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인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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