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보수 때는 주 80~90시간까지도 일해야 하는데 현행 제도로는 일정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고 하지만 몇 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작업을 위해 인력을 채용하려는 기업이 있을까요?”

‘주 52시간 근무제’가 이달부터 시행되면서 정유·석유화학, 철강기업이 인력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 공장들은 자동화된 대규모 설비를 4조 3교대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평시에는 주당 52시간을 초과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2~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정기보수가 변수다. 기업들은 정기보수 기간의 특수성을 감안해 정부에 예외를 요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 52시간 여파… 정유·화학 정기보수 '비상'
기업은 대규모 정기보수를 할 때 정유설비는 2~3년, 화학설비는 3~4년을 주기로 잡는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지난 4월과 5월 각각 정기보수를 마무리하며 한숨을 돌렸다. 현대오일뱅크는 다음달 대산공장에서 석유 정제·고도화설비 정기보수에 들어간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도 10월께 정유·석유화학 설비 전반을 점검한다.

10~15일 정도 걸리는 소규모 보수는 공장 가동 중에도 수시로 이뤄진다. 대보수를 할 땐 설비 가동을 중단한 뒤 모든 부분을 점검하고 노후 장비를 교체한다. 비용은 수천억원 들어가고, 기간도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60일까지 걸린다. 계획된 일정보다 단 하루라도 미뤄지면 납기 지연에 따른 손해가 크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수 작업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글로벌 수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을 감안해 기업은 대보수 기간 근무 체제를 2교대로 전환해 주 70시간,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90시간 이상 근무했다. 업계에서는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가 있지만 정기보수 기간에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시간이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철강업계도 일어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응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포스코를 비롯한 각 기업은 탄력근무제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활용해 최대한 인력 투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예정된 기간 안에 보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기업에 주 52시간 근무제의 장점을 설명하며 동참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정기보수가 길어지면 생산성이 떨어질 일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업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까지 확대하거나 정기보수를 ‘특별 연장근로 인가’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