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하버드의 글쓰기 수업
하버드대의 글쓰기 교육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신입생 전원이 입문 과정인 ‘논증적 글쓰기 10’과 고급 과정인 ‘논증적 글쓰기 20’ 중 하나를 이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심화 과정으로 넘어간다. 한 반 수강생은 15명. 학생들을 꼼꼼하게 지도하기 위해 소수정예를 고집한다. 1872년부터 147년째 이어오는 전통이다.

수업은 토론 중심의 세미나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교수들은 분야별 전문지식과 논리력, 표현력을 하나씩 키워 준다. 글쓰기 실행 단계에서는 1 대 1 첨삭 지도에 초점을 맞춘다. 단순히 단어 몇 개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이끌면서 몇 번이고 다시 쓰도록 돕는다. 학생들이 수정한 글을 제출하는 주에는 교수마다 60시간 이상 일한다.

학생들은 고쳐쓰기를 반복하며 학기당 3편의 긴 에세이를 완성해야 한다. 고급 과정에서는 수십 개 논제 중 8개를 선택해 공부한다.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사랑과 힘’ ‘생물학과 문화의 충돌’ ‘기억의 정치학’ 등 다양하다. 교수진은 학자와 시인 소설가 에세이작가, 역사가 등 영역별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해 사회학, 경제학, 철학, 역사,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읽은 다음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에세이를 써보라”고 권한다. 문과 학생에게는 독창적인 논지 전개, 이공계생에게는 실험 결과의 정확성 등 논증을 중시하는 글을 쓰게 한다.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낸시 소머스 교수는 “시험만 잘 보는 학생은 ‘정해진 답’을 찾는 데 급급하지만 글을 잘 쓰는 학생은 ‘새로운 문제’를 찾아낸다”고 말한다. 3, 4학년생을 위한 ‘논증적 글쓰기 50’ 과정도 운영한다. 이렇게 해서 한 학생이 4년간 제출하는 글은 종이 무게로 50㎏에 이른다.

하버드대뿐만 아니다. 이공계 명문인 매사추세츠공대(MIT)도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를 통해 학년별 글쓰기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 글쓰기 경험이 부족하면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고도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의 30%가 글쓰기 능력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는 바람에 학교가 교과과정 확대, 맞춤형 수업 도입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잘 다듬은 글은 ‘생각의 집’을 빛나게 하는 창문과 같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40대 직장인 1600여 명에게 “가장 도움이 된 수업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때 ‘혹독한 글쓰기’를 배우지 못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나이 들고 승진할수록 글쓰기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