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편 갈라 "네 탓" 싸움 부추기고

정책 부작용엔 '大義' 앞세워 눈 감으며

'보고싶은 것'만 보는 설계주의에서 벗어나야

이학영 논설실장
[이학영 칼럼] 좌파 정치가 극복해야 할 함정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된 것은 1~3차 협력업체들을 쥐어짜고 쥐어짠 결과”라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말이 아니라 실력과 땀으로 결과를 만드는 삼성에서 가슴 부둥켰던 귀한 시간들을 폄훼했다”는 삼성 퇴직자의 반박문에 이어 같은 당 최고위원으로부터도 “여당 원내대표로서 할 소리가 아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계 1등이라는 성과는 착취 같은 부정행위로는 이룰 수 없다. 수많은 연구원들이 고통 속에서 열정으로 이룬 것이다.”(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

홍 원내대표가 “일부에서 꼬투리를 잡아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한 마당에 핀잔의 글을 보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 전해 줘야 할 게 있다.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들을 보는 정부·여당 실력자들의 편견과 적개심’이 그의 말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 아니냐는 경제계의 우려다. ‘최저임금 대란’을 놓고 당정 고위인사들이 “갑질을 해대는 대기업들의 횡포가 문제의 본질”이라며 난데없는 ‘대기업 원죄론’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그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정·청 간부들에게 ‘혁신성장’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면서 “기업과 자주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기업 애로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강조하는 와중이어서 정권 실세인사들의 기업관(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우외환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돼 가고 있는 이 나라 경제를 튼튼한 체질로 재건해 지속 가능한 성장 및 일자리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지난달 치러진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전례 없는 압승을 몰아 받은 터라 더욱 그렇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1년여 전까지의 야당 시절과는 달라야 한다. 구호만 현란하고 달콤할 뿐 진중함과 구체성이 없는 ‘불임(不姙) 좌파’ 소리를 듣는 일이 없으려면 몇 가지를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걸핏하면 우리 사회를 틀어쥔 자와 쥐어짬을 당하는 자로 편 가르고 도식화하는 습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승자의 오만을 경계하고 패자의 눈물을 닦아 줘 넘어진 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성공한 자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몰아붙이고, “걸리기만 해봐라”며 겁박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무엇에서건 일이 안 풀리는 원인은 복합적이게 마련인데, 누군가를 탓하고 핑계 삼는 사회로 흘러간다면 종착점이 어디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집단주의에 내재된 함정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각 개인이 아닌 ‘모두’를 앞세우는 공동체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정책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대의(大義)를 위해 감내해 줘야 할, 불가피한 것’으로 넘겨 버리기 십상이다.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고…”를 고집하는 정부·여당의 요즘 모습이 그렇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그럴듯하더라도 생사람을 잡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면 좋은 정책·정치라고 할 수 없다.

설계주의에 대한 맹신(盲信)에서 빠져나오는 일도 시급하다. 최저임금을 단박에 끌어올리면 저소득계층의 한계소비를 늘려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단적인 예다. 설계주의가 특히 무서운 것은 정책 책임자들이 십중팔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 이상”이라는 자료를 제공해 논란을 일으킨 청와대 참모들이 그랬다. 처참한 실패로 끝난 중국 마오쩌둥 정부의 ‘대약진운동’ 당시에도 당 간부들은 “곳곳에서 눈부신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거짓 보고서를 올리기에 바빴다는 사실(史實)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훌쩍 넘어갔다. 야당 시절의 ‘공격본능’은 내려놓을 때가 됐다. 모두를 품어 사회 구성원 각자가 최대한 잠재력을 떨치게 하는 ‘조성자(助成者)’로서의 성숙함과 치열함이 절실하다. “아니면 말고”의 탁상 설계에서도 내려올 때가 됐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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