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블록체인과 바이오산업
올해로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0년째다. 비트코인 열풍 덕분에 블록체인 기술도 낯설지 않게 됐다.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중앙의 개입 없이 신뢰할 수 있는 다자간 거래를 구현하는 데 있다. 비트코인이 세계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각 국가에는 화폐를 통제하는 중앙은행이 있지만 아직 세계 화폐와 세계은행은 없다. 비트코인을 활용하면 세계은행 없이도 다자간 신뢰 구축 생태계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컴퓨터 공학계에는 ‘비잔틴 장군의 문제’라는 난제가 있었다. 흩어진 장군들이 일시에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서로 통신할 때 상호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을 찾는 문제다. 네트워크에 일부 배신자가 있어도 전체적으로 신뢰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1980년대에 그 원리가 정립됐고, 블록체인은 이를 바탕으로 만든 기술이다.

인터넷의 원리가 정립되고 기술적으로 구현된 시점은 1969년이지만, 한참 후인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붐이 일며 실생활에 쓰이기 시작했다. 제2의 인터넷으로 불리는 블록체인 역시 최근 몇 년간 비즈니스 측면의 응용 시도가 활발하다. 하지만 아직 유의미한 사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비트코인 총액이 한때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넘기도 했지만, 그게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꿨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마땅찮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이오산업에 적용하면 어떨까. 최근 블록체인 연구자와 만날 기회가 있어 이 화두를 꺼냈더니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약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병원균 등과의 싸움이다. 이들은 몸속에 잠복하다 자기 세력이 체내 면역력보다 강하다고 판단하면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병원균에 일제히 신호를 주는 중앙 병원균 같은 것은 없다. 이들은 마치 비잔틴 장군들처럼 상호 소통을 통해 신뢰를 확인하고 공격 시기를 판단한다. 중앙 개입 없이 다자간 신뢰체를 형성한 셈이다.

동일한 원리를 가진 블록체인 기술을, 병원균 간 소통 물질을 찾거나 소통 방식을 분석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균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면 적군 통신을 도청하는 것처럼 신약 개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기술의 응용은 창업가나 기업이 다방면으로 참여할 때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다. 필자 역시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을 운영하며 신기술을 서비스에 녹이는 방안을 늘 고민해왔다. 블록체인 역시 진정 제2의 인터넷이 되려면, 어떤 영역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 게 효과적일지 넓은 시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