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청와대 지시로 ‘정책결정 사전점검표’ 작성 지침을 마련 중이라는 한경 보도(7월9일자 A13면 참조)다. 정책 추진 시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표준절차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지침에 따라 각 부처는 빠르면 내달부터 주요 정책보고서에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 등의 청취 절차와 그 내용, 정책 이력 등을 담은 사전점검표를 첨부해야 한다. “정책이 이해관계자의 반발로 혼선을 빚거나 철회되는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행안부 설명이다.

정책 실패와 그로 인한 행정력 손실을 줄이자는 의도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몇몇 일방통행식 정책으로 적잖은 혼란을 초래했던 것도 사실이다. 교육부가 올초 유치원 영어교육을 금지하려다 학부모 반발로 접었고, 법무부도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검토하다 투자자 반발에 이를 철회했다. ‘주 52시간’ 시행을 앞두고 위반기업 처벌 유예를 둘러싼 정부 내 ‘엇박자’도 그런 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자칫 경도(傾倒)된 ‘여론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어서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인기가 없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정책들이 여론 반영을 빌미로 사전에 대거 배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득권의 벽이 두터운 신(新)산업 관련 규제개혁이 대표적이다. 원격의료만 해도 시민단체, 의사 등의 반대로 6년 가까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수년째 논의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여론 눈치를 본 결과 세월만 허송한 채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정부 내에서도 “국익을 위해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해야 할 정책은 밀려나고, 의견 수렴이 쉬운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책에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가 모든 정책에서 의견 수렴이나 공론화 핑계만 댄다면 책임행정과 혁신성장은 요원해진다. 사회 갈등도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의견 수렴이 정책 보완절차가 아니라 기득권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으로 전락한다면 대통령이 공직사회에 당부한 ‘규제개혁을 위한 혁명적인 접근’이나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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