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어니/ 천만 사람 우르르 강 위로 나왔네./ 쩡쩡 도끼 휘두르며 얼음을 찍어내니/ 울리는 그 소리가 용궁까지 들리겠네./ 찍어낸 층층 얼음 설산처럼 쌓이니/ 싸늘한 그 음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네.’ 조선시대 김창협의 시 ‘얼음 캐는 이들을 위한 노래(鑿氷行)’ 일부다. 한강의 얼음이 두꺼워지면 백성들은 부역에 동원됐다. 얼음을 일정하게 잘라 석빙고(石氷庫)로 옮겼다.

[천자 칼럼] 석빙고 원리
지금의 동호대교 부근에 있던 동빙고(東氷庫) 얼음은 여름철 왕실 제수용으로 썼다. 용산의 서빙고(西氷庫) 얼음은 각급 관리에게 배급했다. 한창 더울 때는 무료병원인 활인서의 환자와 감방 죄수에게도 나눠줬다. 동빙고에는 1만여 개, 서빙고에는 13만 개 이상을 쌓아뒀다.

이 많은 얼음을 어떻게 녹지 않도록 보관할 수 있었을까. 석빙고의 과학적 원리를 푸는 열쇠는 세 가지다. 첫째는 특이한 천장 구조다. 화강암 재질의 아치형 천장을 1~2m 간격으로 몇 개씩 이어 축조했다. 둥글게 파인 공간은 더운 공기를 위로 모으는 에어 포켓 역할을 했다.

다음은 지붕 위로 난 세 개의 환기 구멍이다. 이 환기구가 에어 포켓에 갇힌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그 덕분에 복사열로 데워진 공기가 위로 나가고 아래의 찬 공기는 오래 남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물을 빨리 빼내는 배수로와 천연 단열재다. 얼음과 벽, 천장 사이를 짚이나 왕겨 등으로 채워 단열 효과를 높였다.

이 같은 ‘석빙고 원리’는 식품 저장고나 첨단 에어컨, 냉장고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바람 없는 에어컨(무풍 에어컨)’도 석빙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히트 상품이다. 시원하길 원하면서도 냉방 직풍은 피하고 싶은 소비자의 상반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람 없이 저온을 유지하는 석빙고 방식의 복사냉방 원리를 적용했다고 한다.

냉매에 따라 기능이 좌우되는 냉장고도 그렇다. 초창기에는 암모니아가 냉각제로 많이 쓰였지만 이후 프레온으로 대체됐고, 요즘은 천연가스와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대체냉매로 바뀌고 있다. 이 역시 석빙고 원리에서 나온 기술이다.

피서철이면 너도나도 산과 계곡을 찾는다. 경남 밀양 천황산의 얼음골은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었다가 처서 이후에 녹는 신비의 계곡이다. 구멍 뚫린 화산석이 겨울에 냉기를 저장했다가 여름에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북 청송 주왕산 얼음골과 의성 빙계계곡, 충북 제천 능강계곡에서도 한여름에 얼음을 볼 수 있다.

멀리 가지 못하면 또 어떤가. 냉장고 얼음으로 신선한 화채를 즐기고, 에어컨 아래 독서삼매에 푹 빠지는 것도 좋다. 저마다 마음속에 석빙고 하나씩 품고 살면 찜통 세상이 좀 더 청량해지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 보면서.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