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이나 쇼크, 한국은?
순진했던 미국이 무서운 미국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켰다. 중국이 국제무역규범을 지키면 미국에도 이익이 되리라 생각했다. 중국은 날개를 달았지만 반칙으로 미국을 괴롭혔다. 결국 중국의 수출 때문에 미국은 제조업 일자리 200만 개가 없어지는 ‘차이나 쇼크’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으로 게임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유무역을 폐기하고 미국 국익에 맞게 공정무역으로 바꾼다는 ‘트럼프 쇼크’에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의 벼랑 끝 전술에 몰린 중국도 칼을 뽑았다. 중국은 지구전을 펴지만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봉합은 되겠지만 두 나라 사이에 낀 한국은 시달릴 대로 시달리다가 낯선 무역질서에 직면할 것이다.

무엇이 미국을 무서운 나라로 바꿨나. 트럼프 쇼크에 대해 유럽이 반발하면서 공장을 해외로 이전키로 한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 근로자들은 실직할 판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경기가 좋아져 다른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중국의 첨단 기술 탈취로 인해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제품 수출이 막히고, 전통적 무역질서가 무너져 세계 각국이 중국의 상품 수출국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첨단 기술을 요구해왔다. 첨단 기술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고 안 되면 불법으로 기술을 빼돌렸다. 그러나 WTO는 무기력했다. 기술 탈취 덕분에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나라가 됐고 미국의 군사력에도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은 군사적 경쟁 없이 글로벌 경제와 인터넷을 이용해 미국을 누를 수 있다고 공언했다. 순진한 미국은 뒤늦게 중국의 야심을 깨달았다.

모든 나라가 차이나 쇼크에 시달릴까. 독일은 중국의 성장을 기회로 활용했다. 중국 진출 독일 기업은 중국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면 집단으로 떠나겠다고 반발했다. 이런 결기 뒤에는 치밀한 전략이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기술 자급자족과 제조 초강대국을 달성한다는 ‘중국제조 2025’에 영향을 미칠 만큼 대담했다. 둘 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국가 전략이다. 인더스트리 4.0으로 노동 투입은 줄이고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기업이 저임금을 좇아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인건비가 싸고 숙련 노동이 많은 동유럽을 지렛대 삼아 중국 의존도가 올라가지 않게 했다. 게다가 수출·투자하는 국가의 현지 수요를 신속하게 따라잡아 글로벌 가치사슬이 확대되도록 기업의 의사결정을 분권화했다.

한국은 어떤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서 경험했듯 차이나 쇼크가 치명적이란 걸 절감했다. 해외 싱크탱크는 한국이 차이나 쇼크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한국은 눈앞의 이익만 좇고 있다. 한국은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가 높지만 중간재가 대부분이라 중국도 한국에서 수입하지 못하면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저자세로 일관했다. 중국은 한국의 첨단 기술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삼성 반도체공장 유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섰을 정도다. 이런데도 한국은 첨단 기술과 인력 유출을 방치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중국제조 2025의 성공에 기여하는 셈인데, 중국의 이 계획이 달성될 때쯤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중국이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중국은 ‘중국몽(中國夢)’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은 미몽(迷夢)에서 헤매고 있다. 대중 수출 특수가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을 줬지만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대적인 투자로 국내의 저숙련 일자리가 망가지고 성장과 분배 모두 악화됐다. 중국제조 2025가 성공하면 고숙련 일자리까지 망가진다.

국가 전략을 확 바꿔야 한다. 한국이 미국처럼 무서운 나라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독일처럼 영리한 나라는 될 수 있다. 중국이 반칙하면 옐로카드라도 내밀고, 첨단 기술 유출을 막는 법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교육 및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나라다. 기술과 인적 자본 혁신에 유리하지만 혁신을 방해하는 제도와 정책 탓에 성과가 매우 낮다. 소득주도 성장은 물론 혁신을 방해하는 정책을 제거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