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변속기도 독일을 이길 수 있다
기적이다.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 축구를 꺾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의 청년들은 1%의 승리 가능성을 믿고 투혼을 발휘했다. 단 1초도 포기하지 않았던 젊은 선수들의 열정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랑스럽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에, 2014년 월드컵 우승팀이다. 실력이나 기술 면에서 한국 축구는 한 수 아래다. 그럼에도 한국은 승리했다. 객관적인 실력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할 수 있다’는 한국인의 강한 열정을 독일 그리고 세계인은 간과한 듯하다.

한국인의 몸속에는 가능성이 희박한 일도 성공시키는 DNA가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외면하고 무시한 건 아닌지 이번 기회에 돌아볼 일이다. 필자는 지난해 K2전차 변속기 국산화 개발 과정에서 과도한 내구성 기준 탓에 독일산을 수입하기로 결정한 결과를 무척 아쉬워했다. 최강의 독일 기술에 맞서 1%의 무결함 합격 가능성을 뚫고자 애쓴 지방의 한 중견 방위산업체의 자구노력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정부가 실패한 기술 개발이라고 외면한 K2전차 변속기 생산을 접어야 한 이 업체는 직접 수출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한국과 독일 제품 사이에서 고민하던 터키 정부가 한국산 변속기 수입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좋은 소식도 들린다.

이미 1차로 들여온 독일산 변속기 몇 대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다. 2차에 적용될 국산 변속기 시험에서 일부 볼트 부품이 파손되자 이를 이유로 정부가 또다시 독일산 수입으로 결정했는데, 그 부품은 사실 독일제였다. 고장 안 나는 기계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 대처 방법을 체계적인 매뉴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없는 고장 및 원인 규명과 수리의 반복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독일 기계 기술도 1, 2차 세계대전 등을 통해 개발→제조→파손→재개발→재제조의 반복 시험 과정을 거쳐 습득된 것이다. 엔진과 변속기를 연결하는 파워팩은 고성능 동력기계의 핵심 요소다. 세계 굴지의 완성차 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국산화된 파워팩이다. 전차, 열차, 산업 차량, 농기계용 파워팩도 국산화해야 국내 산업 기반이 살고 안정적인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확보된다.

기술 제품의 개발 성공은 단순한 투자 지원만으론 안 된다. 철저한 준비와 함께 반전 모멘텀이 중요하다. 일본 소니에 한참 밀리던 삼성은 준비된 우수 인력과 자본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술로의 반전 모멘텀을 잡아 세계 일류의 전자기기 업체가 됐다. 소프트웨어와 지능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는 것은 국내 모든 산업 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반전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 및 삼성과는 달리 중견 방위산업체들은 우수한 인력과 자본 면에서 태생적으로 준비가 덜 된 상태다. 국산 변속기를 그나마 성공적으로 개발하고도 한 대도 납품하지 못한 업체는 도산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팀이 잘못했다는 비난만 받는다면 누가 프로 축구선수를 지망하겠나. 붉은악마가 러시아 원정까지 가서 응원하듯 우리 모두 국내 산업 기술 개발을 응원해야 한다. 정부는 개발한 제품의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더라도 우선 구입해 주고 개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독일 기술과 경쟁한다는 자부심으로 K2전차 변속기 양산에 사활을 건 국내 업체를 지원하는 것은 기술 개발의 열정을 불태우는 기업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