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에서 남에게 지는 일이다. 무언가를 손에 쥔 뒤 대상을 두드려 망가뜨린다는 뜻의 敗(패), 등을 보이며 쫓기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北(배)의 합성이다. 옛 한자 세계에서는 北(배)와 사람의 등을 가리키는 背(배)는 통용했다.

패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모든 승부에서 지면 전패(全敗), 아예 다툼이라고 얘기하기에도 민망하면 완패(完敗)다. 결과가 끔찍할 정도면 참패(慘敗), 운동경기 등에서 스코어를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무릎을 꿇으면 영패(零敗)다.

열심히 했지만 아깝게 질 경우는 석패(惜敗),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지고 말아 울분이 가시지 않은 때는 분패(憤敗)라고 적을 수 있다.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지 못한 우리 국가대표팀의 경우가 이럴 듯하다.

‘憤(분)’이라는 글자는 제 부족함을 자각하는 경우다. 그것이 쌓이면 울분(鬱憤)이 되는 것인데, 분노(憤怒) 등의 단어로 전화(轉化)하면서 흔히는 ‘노여움’의 동의어(同義語)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글자를 ‘노여움’만으로 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공자(孔子)가 스스로를 평가한 대목이 있다. ‘발분망식(發憤忘食)’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끼니 때우는 것조차 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발분(發憤)은 ‘분을 내다’다. 뭔가 더 이루고자 애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 행위다. 공자의 《논어(論語)》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열어주지 못하고,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不發)”는 말이다.

배우려는 자가 뜻한 바를 세워 열심히 나서지 않으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그를 깨우칠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스스로 궁리하지() 않으면 말을 해줘도 알아먹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 간다는 뜻의 ‘계발(啓發)’이라는 단어의 유래다.

결국 스스로 몸이 달아 열심히 자신의 수준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것이 憤(분)이다. 그래서 분발(憤發)이라는 조어(造語)가 가능하며, 의지를 내서 강해지려 힘쓰는 모습을 ‘발분도강(發憤圖强)’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축구가 앞으로도 지녀야 할 마음 자세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