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국가 연구개발(R&D) 혁신방안’ 회의에서 정부 R&D 예산 체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 이유로 “20조원에 달하는 정부 R&D 예산의 고비용·저효율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정은 또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과학계 내부에서는 “과학기술 정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렇다 할 비전 제시도 없이 관련 기구나 회의체를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로 되돌리는 데만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복원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터에 정부 여당이 들고 나온 R&D 예산 체계 손질이 얼마나 과학계의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다.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비를 2022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면서 여당 원내대표가 R&D 예산의 고비용·저효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처럼 들린다. 실패 위험을 안고 있는 R&D는 그 특성부터 일반 사업과는 판이한데,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지기 시작하면 연구자들이 ‘안전한 연구’로 직행할 건 불 보듯 뻔하다. 기초연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부 R&D 성공률은 세계 최고인데 정작 도전적인 연구 성과는 나오지 않는 구조가 더욱 고착화될 위험만 높아질 뿐이다.

돌이켜보면 정부 R&D의 고비용·저효율 지적이 나올 때마다 관료들의 개입은 오히려 확대됐다. 부처마다 들어선 각종 연구관리전문기관들이 그 산물이다. 정부 R&D에 고비용·저효율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연구관리전문기관을 앞세운 관료들의 개입에서 온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정은 부처별로 분산된 연구관리전문기관을 ‘1부처 1기관’ 원칙으로 정비한다지만, 융합 시대에 부처 간 칸막이를 높이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연구관리전문기관 전체를 하나로 통폐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예산 집행의 ‘고비용·저효율’ 문제는 관료 개입과 규제를 줄이는 데서 해법을 찾고, R&D 자체는 실패의 자유를 과감히 인정해서라도 ‘고성공·저실패’를 바로잡는 게 정상화로 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