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경협, 해운 인프라부터 키워야
남북한 화해무드 속에 경제협력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통합 해운물류체계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한 경협은 해운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데, 선박 및 항만 건설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운이 북한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 정도다. 남한의 선박 총톤수는 1100만t이고 북한은 54만t 정도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주요 무역항을 확장했지만 하역설비가 노후화됐고 만성적인 전력 부족으로 화물 기중기를 원활히 가동하지도 못할 정도여서 선박이 항만에 2~5일씩 묶여 있는 실정이다. 또 북한은 산악지대가 많고 도로도 아스팔트가 아니라 시멘트 포장이어서 육상운송도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남북한 경협이 불러올 폭발적인 화물 운송 수요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초기에 대량으로 발생할 식량지원과 도로,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자재 및 건설장비 운송에 필요한 선박을 구비해야 한다. 북한의 열악한 항만시설을 감안할 때 기존 선박을 이용한 운송에는 한계가 있다. 필요한 지역의 인근 해변까지 곧바로 접근할 수 있는 상륙선(LST) 형태의 선박이 있어야 한다. 국내 중소 조선소에 새로운 일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장 건설과 도시지역에 필요한 물품을 운송할 컨테이너 관련 설비도 갖춰야 한다. 컨테이너항만 건설에는 많은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 하고 정치적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해상 부유 컨테이너 터미널이다. 부유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내려진 컨테이너는 바지선으로 강물을 따라 평양 등 내륙 도심지까지 운송할 수 있다. 이 또한 국내 조선소에 맡길 수 있다. 군산, 목포 등지에 있는 대형 조선소는 부유 컨테이너 터미널 조립에 필요한 표준화된 부유물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셋째, 개성공단 형태의 공단이 북한 내부에 건설될 것을 대비해 발전 선박을 준비해야 한다. 일반 섬유제품이나 잡화품이 아닌, 높은 정밀도의 전자 제품을 생산하려면 양질의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넷째,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과 연계한 효율적 운송수단은 해운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북한 지역에는 유용한 광물이 200여 종 매장돼 있으며 이 중 경제성 있는 광물은 20여 종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전역에 696개의 광산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기존 주요 무역항인 청진, 남포, 해주, 송림항 등을 우선 개발해 자원 수출 항구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유명 관광지를 연계할 유람선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남북한 통합 해운물류체계를 구축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의 해운산업 재건계획에는 이런 대비가 없다. 별도의 예산을 책정하거나 남북협력기금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선박 건조를 위해서는 선주, 화주, 조선사가 공동으로 선박투자에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상생펀드’ 설립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생펀드 방식은 무엇보다도 해운투자가 수익을 가져온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성공할 수 있다. 남북 경협에는 해상운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정부 보증이나 국책은행들의 보증을 통해서 민간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남북 경협의 새로운 운송수요에 대비한 맞춤형 선박 건조와 부유 컨테이너 터미널 건조 등의 수요는 일감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내 조선소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더 넓게는 2500만 인구의 북한이란 시장을 넘어 궁극적으로 인구 1억1000만 명의 중국 동북3성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 물류망을 구축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