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히든 챔피언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는 품질과 신용의 상징이다.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1887년 영국에서는 품질 낮은 독일산 제품이란 ‘출신’을 알리기 위해 ‘Made in Germany’를 붙였다고 한다. 저품질로 홀대받던 독일은 100년이 채 못 돼서 뛰어난 기술과 제조업 기반의 수출을 통해 마이스터의 나라로 우뚝 섰다. 바로 이 저력의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엘리트 중소기업들이다.

짧은 산업화의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는 이런 히든챔피언이 누구인가. 일제 시대의 이름 없는 독립 운동가, 종교의 자유를 지키며 신사 참배에 저항해 쓰러져 간 순교자, 무덤도 없는 무명의 6·25 학도병, 산업화를 일군 건설노동자, 파독근로자, 산업 역군들, 민주화를 열망한 학생운동가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 이름 없는 이런 민초들 모두가 한국을 지켜온 히든 챔피언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의 피를 대대로 물려받은 히든 챔피언들은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가. 그 홀대는 그때도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야심차게 출범하자 중소기업 현장은 다소 들떠 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대척점에 중소기업계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지금의 경제지표와 시장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절규는 한계치를 넘었다. 실제로 필자가 지난 지방선거 기간 중 전국 4000여㎞를 돌며 만났던 중소기업인들은 현 정부 들어 임금은 오르고 근로시간은 줄면서 매출이 30%가량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매출이 줄었으니 올해 하반기 고용이 위축될 것은 뻔하다고 토로했다.

독일은 히든 챔피언들과 함께 ‘인더스트리(Industry) 4.0’이란 비전으로 뭉쳐 제조업 혁신을 통해 생산극대화, 가치극대화 즉 ‘대량 맞춤생산(mass customization)’으로의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말로만 떠들고 있는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은 브랜드도, 지향점도,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묵묵히 받들었던 히든 챔피언이 멸종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히든 챔피언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정치권은 이제 희생과 헌신으로 히든 챔피언이 돼야 할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