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 출신인 김병관 의원 등 여당 국회의원 21명이 대기업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벤처기업협회 등은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 자회사 설립을 막는 금산분리 규제를 풀어 벤처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정부도 법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이 M&A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의 성과가 일반 벤처캐피털보다 좋다는 분석이 많다. 구글만 해도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해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V(구글벤처), 후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C(구글캐피털) 등 단계별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IT(정보기술) 기업들은 CVC를 적극 활용하며 산업 경계를 넘는 수평적 확장을 도모함으로써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 벤처 M&A나 플랫폼 모델을 생각하는 대기업들은 규제 측면에서 현저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규제를 피해 독립법인을 만들거나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보지만 추진력이나 투자 속도에서 선진국을 따라가기 벅차다.

그 여파는 벤처생태계의 정체로 이어진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꽃도 피워보기 전에 ‘죽음의 계곡(창업 후 3~7년의 사업화 단계)’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대기업의 진화’도 ‘벤처기업 성장’도 다 놓치는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이 대기업의 M&A를 벤처생태계의 새로운 돌파구로 활용하겠다면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 자회사 허용에 그칠 게 아니다. 또 하나의 M&A 걸림돌인 피인수 회사의 계열사 편입 부담도 함께 덜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피인수기업을 한시적으로 계열사 편입에서 유예하는 정도로는 M&A의 판을 키우기 어렵다. 이번 기회에 금산분리 규제는 물론이고 대기업에 대한 사전적 규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